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네가 만나다니.

홀로 서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났다.

by 너굴

"네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안 만날게."


"내가 만나지 말라고 안 하면 만날 거야...?"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침묵은 충분히 대답이 됐다. 멀리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다른 친구들은 내 표정이 무서웠다고 한다. 분명히 괜찮지 않을 것을 아는데, 눈은 울면서 입은 괜찮다며 웃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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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나를 참 예뻐해 주던 교회 언니가 자신의 남동생을 만나봤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남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새벽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좋은 감정이 생겼고, 친구에게 이 모든 과정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지금부터 그 남동생을 BB라 하겠다)


내가 가장 기분 좋았던 포인트는 그 가족이 나를 정말 예뻐했다는 것이었다. 언니의 남편은 물론, 부모님도 나를 궁금해했고 언니는 말도 못 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외숙모~해 봐!"라고 하며 나를 향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바로 이 포인트를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부러워했다. 그 친구가 바로 위 대화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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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예뻤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이 친구는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어 주일에는 항상 노메이크업에 츄리닝 차림으로 이른 예배를 드렸고, 내 얼굴을 잠깐 보고 학원에 가곤 했다. 상황이 바뀐 시점은 이 친구가 BB를 처음 보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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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사람이야"

매일 전달되는 상세한 보고로 BB의 직업이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친구는 0.5초 만에 대답했다.

"어떻게 저게 의사야??"

나중에 들으니 외모가 친구의 이상형이었다고 한다.


바로 그다음 주부터 친구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치마에 구두를 신고 큼지막한 샤넬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오늘 어디 가?"라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오늘 나와 함께 청년예배를 드릴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항상 앉는 자리가 있었고, BB는 항상 그 자리를 지나며 내게 인사를 했다. 친구는 BB와 인사하는 내 옆에 도도하게 앉아있었고 애써 BB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참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이런 게 촉인가 싶은 느낌이 처음 느껴졌다.


각설하고, 결국 둘은 연인이 되었다. BB는 나에게 어떤 오해할만한 행동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상처가 되었던 것은 연락할만한 이유를 만들고 먼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내 친구였다는 사실이었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잘 안다. 22살이었던 그때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BB는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다만, 상황이 뒤바뀌었더라면 당연히 친구를 택했을 내 마음과 친구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 그땐 너무 슬펐다.


둘의 관계가 공식화되고 친구에겐 다른 친구들의 질책이 쏟아졌다. 처음엔 받아들이던 친구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에게 연락이 왔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나한테 해. 그게 맞아.'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남자친구를 뺏었냐 뭘 뺏었냐. 자기 혼자 좋아해 놓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이후 친구와 나는 늘 함께하던 일상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어딜 가도 친구와 함께 했던 곳이어서 눈물이 났는데, 다들 헤어지면 이래서 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나는 그렇게 남자친구 같았던 친구를 잃고 눈물을 쏟으며 22살 겨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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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가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점점 지쳐갔다. 우리 사이의 기류가 너무 불편해서 같이 있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존재가 되었을까 싶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내가 참 의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홀로 서지 못하니까 모두가 내 편이 되어주기만을 바랐다는 것을.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밥도 먹고, 혼자 여행도 다녀야겠다고. 그러다 보면 마음도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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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국내여행을 시작으로 해외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나의 첫 해외 혼행지는 홍콩이었다.


홍콩에서의 첫날, 피크트램을 타고 스카이 테라스에 올라갔다. 안개가 자욱해 전망대에 오르기 적당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벅찼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것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전망대에는 하트모양 종이에 글을 적고 매달아 놓을 수 있는 방명록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고 매달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이 글을 쓰면서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대충 대견하다, 홀로서기 성공! 뭐 이런 글을 썼겠지' 하며 사진을 찾아봤는데, 의외로 [그래도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기를]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더라. 홀로 서기 위해 떠난 그곳에서 나는 앞으로의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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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18살 때 친구들과 모여 25살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각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서로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보관했다가 7년 뒤에 함께 열어보기로 했는데, 25살 되어 편지를 읽었을 때 우리는 말했다. '18살 어렸던 내가 25살의 나를 위로하네.'


그로부터 또 7년이 흐른 지금, 32살의 나는 상처 받고 여행을 떠났던 20대의 나에게 또 위로를 받고 있다. 이제 홍콩의 높은 전망대 위에 혼자 서있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바람대로 나는 이제 어느 정도 홀로 설 줄도 알고, 누군가와 함께할 줄도 아는 30대가 되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오늘은 퇴근하고 7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 보아야겠다.

마흔을 앞둔 나는 꼭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아, 혹시 친구와 BB의 결말이 궁금할까 싶어 붙이자면 그들은 몇 개월 만에 헤어졌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BB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BB가 왜 BB냐 하면, 비닐봉지처럼 가볍다 하여 내 주변인들이 비봉남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휘리릭- 바스락-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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