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엄니는 나바위성당에서의 일을 그만두시고 가까운 신부님의 요청으로 다른 성당에서 1년 더 일을 하셨다. 퇴임하실 연세는 지났지만 여전히 능력을 인정받으셔서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성당 사무실의 기틀을 잡으시고 완전한 퇴직을 하기로 결정하신 것.
내가 서교동집으로 이사하고 1년 후쯤이었던 그 때, 어머니와 완전한 퇴직을 기념하며 내 서울집에서 어머니와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옷이 없네, 촌스럽다고 하지 마라."
엄마의 완전한 퇴직을 기념하러 오늘 저녁 남산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그래도 레스토랑인게 회사 출근하는 옷으로 입고 오셔요~ 했더니 엄마의 대답.
나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보험회사, 속기사, 성당 사무원 등 어머니는 나를 위해 20여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나를 가지시면서 선생님 일을 그만두셨던 엄마였다. 엄청 똑똑하고 현명하신 분인데.
아버지는 생전에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었고, 또 일찍 돌아가셔서 부부로서 좋은 것, 근사한 것 한 번 해보시지 못하고 그저 나만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다. 아들 마저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있어서 엄마는 이 나이 되시도록 어렵게 일을 하셨다.
그동안 그토록 하고 싶으셨던 시골집에서 꽃, 나무 가꾸면서 사시는 일을 이제 드디어 해보게 되시는 엄마. 두 모자가 곧 모두 실업자가 되는 이 마당에 그래도 마지막에 만나신 좋은 신부님과 싸게 잘 구한 시골집 덕에 연신 행복해 하고 계신다.
작년에 모자가 함께 간 동유럽 여행이 참 행복했더랬다. 그리고 센스 있으신 신부님께 받은 500유로가 조만간 다시 함께 유럽여행을 가기 위한 우연을 만들어주었다. 엄마랑 외국 여행 갔다고, 여자들한테는 말하지 말라던데 안 좋아할거라고, 머 어떠냐, 올해 말이나 내년에 한 번 더 갈까.
그나저나 곧 터미널로 엄마 마중하러 나가는 길이,
벌써부터 눈물이 차오른다.
터미널에서 엄마를 보면 왠지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오늘은 좋은 날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