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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3. 2020

1평 짜리 방에서, 서울 프리뷰

이사일기(2010-2020) - 0. 들어가며

서울, 프리뷰


   10월 1일부터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10년 서울살이 동안 다녔던 아홉 번의 이사, 살았던 열 곳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있다. 참여자들 중 한 사람에게 출판기회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처음에는 대단한 의지를 갖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100일 연속은 다 채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메우고 있다.


   2016년 가을 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던 시점에 그 시기 나의 이야기들을 발견하려 내 SNS를 보던 중 이 기사를 공유한 글을 발견했다.


https://c11.kr/k5s9


   그리고 떠올리게 된 15년 전 나의 이야기. 학원 때문에 서울에 4개월간 머무를 일이 있던 나는 헝그리정신을 탑재하고 친구 하숙방과 고시원에 4개월간 살았다. 이후에 내가 서울에서 생활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2005년 그 때 4개월 동안의 시간이 5년 후 내가 시작하게 될 서울생활의 프리뷰가 되었던 셈이다.



1.8m x 1.8m


   15년 전, 자격증 학원에 다니려고 서울에 몇 달 머무르며 나도 딱 기사 속 크기만한 고시원에 살았다. 침대와 책상 사이 공간에 발을 쭉 뻗으면 머리와 발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 키 180 넘는 사람은 닿았을 것이다. 방 크기는 가로 1.8m X 세로 1.8m 정도, 1평 남짓의 넓이.


   기사 안 사진 속 고시원 방들은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다. 침대 옆 바닥은 의자가 놓여야 할 곳인데 저렇게 짐을 많이 들여놓았으니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곳. 우측 상단 바닥에 아무것도 없이 신발만 놓여있는 이유는 문이 안쪽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당시 한 달에 25~6만원 냈던 것 같다. 방 위쪽에 개구멍만 한 창문이 있으면 2만원 더 비쌌다. 18만원 짜리가 있었는데 지하더라고, 지하 고시원은 도저히 못 살겠어서.


   방과 방 사이는 세게 두드리면 깨질 것처럼 얇은 합판 같은 걸로 되어 있었다.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옆방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가 돌아왔다. 드라마나 영화 속 고시원 옆방에서 전해져 오는 '조용히 해주세요' 는 설정이 아니다.



고시원의 다양한 모습


   나는 공부한답시고 학원에 가는 시간 이외에는 종일 방에 있었다(컴퓨터를 가지고 올라갔던 나는 공부는 안 했고, 기타프로 프로그램으로 노래나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내는 발걸음 소리, 말소리 등이 잘 들렸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이런 저런 사정도 알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을 하러 다니던 아저씨가 계셨다. 4~50대로 보이던 그 분은 늘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고시원을 나섰던 것 같다. 술 한 잔 드신 것 같은 모습을 저녁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몸 쓰는 일을 하시며 혼자서 고시원에 사시는 분이구나, 하고 분에 넘치는 짐작을 했었다.


   내 옆방에는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어린 여성이 있었다. 나의 다른 쪽 옆방에는 내 친구가 있었는데, 컴퓨터가 있던 내 방에서 가끔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벽을 두드리거나, '조용히 좀 해주세요' 그랬다. 그럴 때마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소리가 잘 들리는 건가 생각하며 답답해하기도 하고.



   고시원에서 각자의 방과 10명 정도가 함께 쓰던 공동 화장실 외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조그만 식탁과 냉장고, 싱크대, 밥솥, 가스렌지, 전자렌지가 있었다. 각자가 집에서 보내오거나 사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본인의 이름을 붙여놓았었다. 가끔 있던 계란은 고시원 총무의 서비스였다. 그건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타이밍이 중요했지. '하나씩만 드세요' 라고 적혀있었지만, 몰래 한 번에 두개 먹은 적도 있었다.


   친구는 고시원 건물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유통기한 지나기 10분 전부터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친구는 유통기한이 끝나기 10분 전에 항상 나를 불러서 이런 저런 음식들을 챙겨서 보냈다(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편의점 도시락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이니 주로 삼각김밥이나 냉동식품).


   하루는 냉동식품 중에 좀 비싼 먹을거리가 팔리지 않은 채 유통기한이 지나기 10분 전이 되었나보다. 친구는 나를 불러 삼각김밥과 그 음식(정확히는 생각 안 나네)을 내게 줘서 나를 고시원 방으로 보냈고 같이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로부터의 비보가 날아왔다. "야, 그건 반납해야 된데 씨X" 당시에는 이런 구차한 일이 참 중요했다. ^^


   기사를 통해 본 고시원 사진이, 15년 전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월세는 당시보다 더 비싸졌을 것이고, 고시원의 단위 면적 당 월세는 우리나라 모든 형태의 주택 중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회의 많은 사람,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 사진들 출처 : https://c11.kr/k5s9  (글 내에 공유한 기사 속 사진 : 심규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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