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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4. 2020

누군가를 위한 편지, 크리스마스

이사일기(2010-2020) - 8. 서교동 (2015.07)

   연말이 다가오니 특별했거나 간절한 마음이었던 연말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기억할만 한 연말이 있었을까? 크리스마스 혹은 12월 31일? 퍼뜩 떠오르지는 않는다. 


   아아. 사소한 일이었지만 어느해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5년 연말. 서교동 집에 살고있을 때의 일. 나름대로 내가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인 지도디자인 회사에서의 일이었다. 




나의 손글씨


   2016년까지 다녔던 회사에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서로 함께 겨울을 나던 어느 해, 나는 회사 사람들 모두에게, 아니 그 사람에게 손편지를 써서 건네고 싶었다. 그 사람의 것을 먼저 쓰고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쓰려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모두에게 균등한 양의 편지를 쓰려면 엄청 힘들겠구나.


   그냥 이 사람에게만 쓸까?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사소한 일들을 다른 직원들과 말하기 좋아하는 그 사람은 금방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의 존재를 알릴 것만 같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난 열 대여섯 명 모든 직원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것도 손으로 직접. 쓰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던 분들의 것에는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내 글씨가 더 흐트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문장과 체력이 고갈되어 뒤로 갈 수록 겉치레와 같은 문장들이 조금씩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편지를 받는다면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겠지?


   여하튼! (12월) 23일 퇴근 후 저녁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는 24일 아침이 다 되어서야 끝을 맺었다. 물론 몇몇 분들의 것에는 큰 시간 할애를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정말 힘들기도 했다. 흑흑.


   마침 난 24일 오후반차를 썼던 상태였고(아마도 병원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 점심시간이 되어 회사를 나설 수 있었다. 그 사람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전달하기에는 아주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점심시간 모두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고, 모두의 컴퓨터 키보드 위에 편지를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 사람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아마도) 2015년 겨울에 받아보는 크리스마스 손편지에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그 사람도 그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지만 그 사람과 나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내내 그냥 그런 사이였고, 그 사람은 편지를 건넸던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나고 어떤 이와 결혼을 했다.


   그렇게 그냥 그런 이야기였지만 내게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들은 그 사람과의 기억보다는 그 날 모두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나의 모습이었다. 몇 년만에 해보는 그와 같은 행위를 통해 난 모두를 조금씩 더 생각하고, 편지를 받을 그 사람과 나와의 일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잊을 것 같았던 일들, 애써 떠올리지 않으면 지워질 이야기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꽤 긴 답장을 써서 보내준 이도 있었다.



   그 해의 기억 때문인지 올해 크리스마스 혹은 새해 첫날, 몇 남지 않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 품에 도착할 손편지를 쓰고 싶었다. 아직 하나도 못썼지만, 특별한 날이 아닌 1월 보통의 날에 받는 편지도 그럴듯 하겠다. 모두들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손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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