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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3. 2018

#5

낙원상가, 인사동, 평양냉면

사실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그녀에게 내가 내려줄 처방이 긴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측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대한 그녀는 주체적인 성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E식당의 평양냉면은 대중적인 편이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보통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대로 그녀는,


“먹을 만 한데요.”

“그러세요? 다행입니다.”


몇 젓가락을 더 맛보고 그녀는,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국물 맛을 깊이 느껴봐야 하나(웃음)?”


‘네, 몇 번의 시간들이 더 필요하죠. 물론 저와 함께.’



냉면 5,000원, 녹두지짐 4,000원.


그녀가 말한 것처럼 이 곳은 저렴한 평양냉면집으로 유명했다. 간혹 가다가 맛이 잘 변한다느니, 위생상의 문제가 있다느니, 와 같은 말들이 들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사랑받는 곳이다. 평양냉면이 5,000원이라니.


나 또한 종로3가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자주 애용한다. 현재는 냉면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오른 감이 있어 옛날에 가졌던 로열티가 어느 정도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종로3가 - 낙원상가 근처에 갔다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점임에는 분명하지.


.


우리가 나란히, ‘함께’ 냉면을 절반쯤 비워내는 동안 내게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닥쳤다. 그녀가 냉면에 보일 반응에 대한 나의 처방(?)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어떤 것.


그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 나의 시선이 바닥을 향하고 있을 때, 벌레 한 마리가 내 시야로 들어왔다. 바퀴벌레로 보이는 커다란 그것은 괜히 나로 하여금 어떤 죄책감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나만 알고 있는 은밀한 장소로 그녀를 데려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이유 중 하나로, 그곳에는 나와 그녀에게 비교대상이 될 만한 연령대의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혹은 조금 어린 사람들이 연애 상대를 어떻게 만나고, 만나서 무얼 하는지 나는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흔히 노출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풍경 속에 우리가 던져져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안정감을 주었는데.


.


벌레가 눈앞에 나타났다.


살아가며 나의 집 안에서 많은 벌레를 목격했었지만, 그 순간의 그것은 내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식당 안의 테이블에 앉아, 서로 좁은 활동반경을 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묵묵히 그것을 바라보며 어디서 들어왔을지 모를 그것이 스스로 문 밖으로 나가주길 바라는 수밖에.


냉면의 면발과 육수, 그리고 이 집의 저렴한 가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것의 행방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늘 출입문을 열어두고 있는 그곳에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애써 담담히 여기며 우리는 냉면그릇과 녹두지짐이 담겨있던 접시를 맛있게 비워냈다.



‘첫’ 식사를 잘 마쳤다. 함께 식사한 곳이 걷기 좋은 종로여서, 일대에서 지도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나의 미천한 지식이라도 뽐낼 수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었다. 함께 걷는 동안의 시간들을 조금은 어색하지 않게 해주었다.


익숙하지만 자연스럽지는 않은, 정감가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낙원상가 근처의 많은 풍경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도 인사동 방향을 향했다.


“냉면을 먹기도 했지만, 날씨가 조금 시원해졌어요.”



그때보다 서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는 지금이었더라면, 인사동 보다는 가회동, 삼청동 쪽을 향했겠지만 당시의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인사동길로 접어들었고, 3분여 걷다가 길 왼편 건물 3층의 ‘전통주점, 생맥주’ 간판에 이끌려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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