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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12. 2018

#4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요

“전시는 잘 보셨어요?”
“네. 잘 이해한 것 같지는 않은데, 좋은 느낌이네요.”  

그녀는 피식, 하고 웃었다.


“전시 괜찮으셨어요?”
“아, 네(미소와 웃음).”


.


해는 어중간한 시선을 지나고 있었고, 나는 이제야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습처럼, 참 어중간한 때였다.


“점심은 드셨어요?”
“아점 먹었어요.”
“몇 시쯤 드셨어요?”
“한 10시쯤?”
“네. 저도 그쯤. 그럼 밥 먹어도 괜찮으셔요?”
“네. 좋아요.”



적당한 식당이나 메뉴를 생각해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음식과 맛집을 주목하던 시절도 아니어서 ‘어떤 동네에서는 어떤 집에 가면 좋다’ 와 같은 정보도 내겐 거의 없었다.


어딜 갈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종로3가 쪽에 저렴하고 괜찮은 평양냉면 집 있다던데 아세요?”


‘평양냉면이라.., 내가 몇 차례 꺼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 받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알고 있는 집이었고 가본적도 있었다. 어쨌든 방향을 찾았다.


.


우리는 낙원상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E식당이라니, 일민미술관에서 걷기에는 적당한 거리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적당하고, 나의 미약한 평양냉면 지식도 뽐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을 내가 먼저 제안했다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남았다.


3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여느 때처럼 E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여름은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날씨,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저렴하게 드시려는 분들의 목마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어느 정도의 격식을 차려야 하거나 그다지 친밀하지는 않다고 느끼는 사람과 단둘이 있는 시간동안의 고요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잠깐 줄을 서는 동안 그 정적을 깨려고 대화들을 시도했다.


“근처에 자주 오세요?”
“아니요. 종각이나 광화문 쪽은 가끔 가는데, 여기까지 오는 일은 잘 없는 것 같아요.”
“네. 그렇죠. 저도 그랬는데 낙원상가가 궁금해서 오거나, 이 곳 E식당에 오러 몇 번 와봤어요. 저도 자주 오게 되는 곳은 아니네요.”
“네.(웃음)”


우리를 위한 자리가 났다. 여름과 초가을의 오후에는 가게 안보다 바깥 평상 자리가 더 많은데 운 좋게도 가게 안 쪽 테이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각각 냉면 하나씩과 녹두지짐을 주문했다.


.


평양냉면 러버가 비경험자를 첫 만남으로 이끌 때의 마음가짐은 대체로,


‘평양냉면은 처음부터 맛있기는 힘든 음식이니 인내를 갖고 시도해볼 것’ 이라거나,
‘평양냉면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가벼운 음식이 아니니 경건한 마음으로 도전하도록(대체로 비경험자가 경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강했을 때)’ 혹은 좀 더 세심하게,
‘면과 국물을 처음부터 함께 먹으면 맛을 잘 못 느낄 수 있으니 국물만 먼저 들이킨 후 그 구수한 맛이 느껴지면 비로소 면과 함께 먹어보도록’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냉면이 먼저 나왔고, 우리는 각자 젓가락을 들었다. 젓가락을 손에 들고 면을 들어 입 안에 넣는 그녀. 그녀의 첫 마디가 나로 하여금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결정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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