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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7. 2019

#6

한 걸음 더

당시 나는 주로 지도와 관광가이드북을 만드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인사동 관광안내도 제작을 담당했었다. 인사동 곳곳의 장소들을 리써치하고 공간의 주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동네의 특성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인사동에는 화랑, 갤러리, 고미술, 서예, 카페, 음식점, 전통찻집, 관광용품 판매소 등의 공간이 있었는데, 인사동 거리의 중심인 ‘인사동길’ 변에는 주로 대형 프랜차이즈나 관광 관련 업종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유명한 고서점 통문관과 고미술점, 화방 등 몇 곳을 인터뷰하였는데,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솟아 인사동의 중심이 되어야 할 공간들이 자꾸만 사라지거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셨다.


그것은 주류에서 밀려난 이의 신세한탄이 아니라, 그 동네의 특성을 해당 관공서가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판이라고 생각했다.


‘돈만 아는 저질들’


.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와 내가 함께 오르기 시작한 이 계단이 향하는 ‘전통주점, 생맥주’ 집이었다. 이곳에서 보낼 시간의 밀도를 내가 얼마나 촘촘하게 잘 조직할 것인가.


내가 먼저 계단에 올랐고 조금의 차이를 두고 그녀가 뒤따라왔다. 나는 그녀를 고려한답시고 약간 느린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나를 따라붙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을 느끼고 처음보다 속도를 붙였다.


약간의 헐떡임이 느껴지려는 차에 3층에 도착했고, 그녀는 앞머리 안쪽에 맺히려는 땀을 확인하듯 이마를 한 번 훔쳐냈다.


.


가게 안은 ‘이곳이 인사동’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듯 했다.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 창문에 프린팅된 가게 이름 따위의 글자들이 우리를 맞이했지만, 그것들은 단순히 낡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연륜과 멋이 느껴졌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온 집인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네요.”


그녀는 미소로 내게 동의를 표시했다(고 생각되었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씩 그리고 골뱅이무침을 주문했다.



트위터로 나는 나와 우리 팀의 공연을 홍보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그녀는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그녀를 두 번째 만난 날 2시간이 조금 넘은 시점에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흔하지만 입으로 발음했을 때 예쁜 느낌이다.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에게 ‘OO씨’ 라고 불렀다.


.


그녀는 일본어 번역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한다고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부럽다’는 뉘앙스의 말들을 건넸는데 그녀는,


회사를 다니는 것과 비슷한 수입을 올리려면 정말 바쁘게 지내야 한다는 점,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점, 일이 없을 때는 참 난감하다는 점 등에 대해서 내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고민이라며.


“엄마, 아빠와 동생은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저는 아직 서울에 있는게 좋아서.”

“그쵸? 저도 음악 때문에 서울에 오긴 했는데, 이제 다시 내려가 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언젠가는 내려갈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


그녀는 성신여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성북. 한 번도 살아보거나 자주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막연히 동경하는 동네다.

서울성곽, 정릉, 길상사, 성북천, 낙산공원, 둘레길. 옛날 서울...

그녀가 성북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나를 기분좋게 했다.


.


맥주집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첫 만남 때 나누지 못해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많은 것들을 해소하였다. 조금 가까워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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