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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7. 2019

#7

집까지 걸어오다

인사동길의 가운데쯤 위치한 술집에서, 그날 우리의 공식적인 만남은 종료되었다.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간다던 그녀와 함께 역까지 걸었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로3가역 안으로, 나는 버스를 타러 종각역 방향으로 향할 것이었다. 종로3가역 1번 출구 앞에서 헤어지려는데, 그녀는 조금 걸어야 하겠다고 말한다.     


‘지하철에 타기 전에 들를 곳이 있는지’, ‘종로5가역까지 걸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바로 4호선을 타기 위해 동대문역까지 걸을 예정인건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타기로 마음이 바뀐 것인지’ 와 같은 사정들을 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마터면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물어볼 뻔 했다.   

  

“네. 조심히 들어가시고, 연락할게요.”

“네. 들어가세요.”     


.     


세검정 근처의 홍은동(홍지문과 옥천암 사이,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에 살고 있던 나는, 종로 쪽에서 약속이나 볼 일을 보고 나면 종로3가에서 1가를 모두 거치는 7212번 버스를 타거나 KT광화문지사 혹은 경복궁역 앞에서 1020, 1711, 7018, 7022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교차로 정류장에서 내리곤 했다.     


7018번 버스를 타는 날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홍지문35통 정류장까지 갈까, 세검정교차로 정류장에서 먼저 내릴까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 ‘홍지문35통’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넌 후 바로 집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5분여의 시간을 절약할 것인지, 세검정교차로 정류장에서 내린 후 세검정교차로를 지나 세검정로와 홍제천 사이의 아랫길로 내려와 홍지문을 직접 통과해 귀가할 것인지의 두 가지 선택지가 가진 장단이 있어서 -     


보통 사람이라면 혹은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다면 대부분 집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을 택했겠지만,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세검정교차로에서 홍지문을 거쳐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은 너무도 근사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7018번 버스를 탄 날에도 대부분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이날 나는, 세검정교차로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내가 평소에 택하던 방법 외의 다른 방법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음을 알았다. 종로3가, 종로1가, KT광화문지사, 경복궁역 정류장을 모두 도보로 지나고, ‘어제 만난 슈팅스타’를 들으며 자하문터널도 지나고 세검정교차로까지 걸어서 와버렸다.     


일민미술관에서부터 전통주점·생맥주집까지, 그녀와 내가 오늘 함께 하며 거쳤던 공간과 그 속에서의 시간들을 복기하면서.     


.     


지금까지의 모든 연애 비슷한 것에 서툴렀던 나는 늘 누군가와 가졌던 시간들에 대해서 바로 되돌아보고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다른 시나리오로 인해 펼쳐질 상황에 대한 기대를 해보곤 했다. 그런 상상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음번 만남에서 개선된 언행으로 나타나는 효과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망상들을 하며 한 시간을 반을 걸어와 버리다니.     


종로3가역 앞에서 헤어지고 난 뒤 바로 그녀에게 보낸 DM에 대한 답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홍지문을 지나고 있었고, 홍지문35통 정류장 앞에 도달했을 때쯤 그녀에게서 DM이 왔다.     


‘냉면 맛있었어요.’     


.     


냉면은 맛있었고 오늘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왜인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답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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