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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30. 2021

오른손의 손톱을 짧게 깎는 일

일상

오른손의 손톱을 짧게 깎는 일



왼손 손톱은 아주 짧고 오른손의 손톱이 긴 모든 사람들 중 99% 이상은 아마도 기타 치는 사람일 것이다. 


왼손 손톱이 아주 짧은 이유는 다른 줄을 건드리지 않고 지판을 안정적으로 잘 누르기 위함이고, 오른손의 손톱이 긴 이유는 핑거링과 스트록하는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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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어머니 친구분 남편께 기타를 배웠다. 어머니는 친구분께 빌려준 약간의 돈을 받지 못한 댓가로, 나로 하여금 기타 선생님이셨던 친구분의 남편께 기타를 몇 달간 배우게 했다. 당시의 나는 공부보다 음악에 관심이 더 많기도 했다.


기타 선생님은 '자양이는 연습은 안 하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잘 하는 편'이라고 옆에 있던 어머니께 가끔 말씀하셨다. 나는 열심히 연습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엄니가 틀어놓던 노래들의 반주를 기타로 똑같이 따라서 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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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력은 대학교 입학해서 통기타 동아리에 가입, 우리 기수 사이에서 좀 한다~ 라고 인정받은 정도,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열심히 연습하던 후배들이 기타 실력으로 나를 훌쩍 앞서갔다.


그런데도 무슨 음악을 하겠다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이래저래 고생만 하고, 돈도 잘 못 벌다 이제 겨우 사람구실하면서 살고 있는데. 아, 근데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한 건 아니다. 근본 없이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20분쯤 전에 손톱을 깎았던 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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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동아리 동기 중에는 손톱관리를 아주 잘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프로처럼 손톱을 보호해주는 것도 발라가면서 세심하게 관리했다.


난 그렇게까지는 못했지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기타를 치는 사람으로서 왼손 손톱은 아주 짧게, 오른손 손톱은 길게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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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서울로 올라와 2013년 정도까지 음악활동을 한 것 같다. 나의 능력 없음과 핑곗거리로 우리 팀은 염원하던 1집 앨범을 완성하지 못하고 각자 뿔뿔이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한 때는 가장 중요한 물건처럼 여기던 기타도 만져본지가 5년도 넘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손톱을 깎을만 하기도 할텐데. 오른손 손톱도 왼손처럼 짧게 확 다 깎아버릴까? 20분 전 나는 조금 망설였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처음 기타를 배웠던 18살 이후로 지금까지, 오른손 손톱을 왼손처럼 짧게 깎아본 적이 없다. 군대에 있을 때도, 교통사고를 당해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할 때도, 기타를 만져보지도 않은 5년 전 부터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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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지만, 대학교 졸업 때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음악이라도 해보겠다고 그것을 구실 삼아 서울로 올라온 것에 대한, 허송세월해버린 내 시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사실 손톱을 짧게 깎아버리면 아주 편한데. 손톱 아래에 뭐가 들어가서 지저분해 보일 염려도, 무언가에 부딪혀 찍히거나 끊어질 염려도 없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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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아니 30분 전 내 오른손 손톱을 보며 왼손의 그것들처럼 짧게 깎아버릴지 말지 깊게 고민하던 짧은 시간으로부터 얻은 답, 아직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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