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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05. 2020

3~4평 남짓의 시작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3~4평 남짓의 시작


   집 계약을 마치고 한달 여 전주로 내려가 일신(?)을 정리했다. 엄마와 나는 애써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나누던 대화의 끝에는 항상 내가 무엇이든 잘 하길 바라는 엄마의 따뜻함이 있었다는 걸 나도 알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지금까지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의 시기에 나는 어머니를 이해시킬 ‘상경의 근거’를 만들지 못했다. 이곳(전주)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하기 힘들어 더 큰 기회의 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하겠노라는 막연한 대답만 반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아쉽다. 도대체 뭘 하겠다고.”

   “저에게는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일도 같이 하면서 제 앞가림은 잘 하겠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상경하는 시점을 약간 늦출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미모의 기타 레슨생과도 작별을 고하고(나만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서울로 짐을 부치고,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미리 인사를 해두고.


   2월 초 우린 이사를 무사히 마쳤다. 방이 좁아서 짐은 많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었으니 덮을 이불과 옷 조금, 컴퓨터 하나가 전부. 방의 넓이는 3~4평 남짓이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통로가 우리 방을 통과하게 되어있어 옥상은 우리만 쓸 수 있었다는 점이 한 가지 위안거리.


   짐을 풀어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시장에 나가보았다. 각종 반찬, 닭강정, 족발, 떡 등 망원시장에는 먹거리가 참 많았다(지금처럼 문화관광형 시장 느낌은 아니었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장보러 나온 동네 사람이 참 많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온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망원시장 다이소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고, 동네도 한 번 탐색해보고, 운동 삼아서 선유도공원도 한 번 다녀오고, 계단을 터덜터덜 올라와 동석과 3.5평 옥탑방에 누워보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넓이만큼의 방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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