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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04. 2020

이 집의 옵션은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이 집의 옵션은


   ‘홍대와 가까운 곳에서는 음악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도 있구나’


   집 계약을 하러 건물 계단을 오르려는데 지하로부터 걸어 나오고 있던 익숙한 그 사람. 바로 G모 밴드의 J씨였다. 이 지하가 혹시 C사운드의 사무실인가? 하는 상상을 더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집은 3층 건물 위의 옥탑이었다. 1층에는 쌀가게와 보일러 수리 업체가 있었고 2층과 3층에는 일반 가정집이, 그리고 지하에는 G모 밴드의 J씨가 소속되어 있던 C사운드의 사무실이 있었다. 집구하기 인터넷 직거래 카페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던 이를 옥탑에서 만나기로 했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여기서 잠깐, ‘집을 계약할 때는 집주인과 해야 하고, 주인의 신분을 꼭 확인한다.’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계약을 위해 만나기로 한 그 사람은 계약기간 도중에 이사를 가려는 세입자였던 것. 이제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겠지만.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우리를 맞이한 이는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풍기는 이였다. 키가 조금 작고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으나 왠지 특별한 직업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사람.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건 특별히 제가 필요하지는 않은데, 버려드릴까요?”

   “혹시 음악 하시는 분인가요?”


   그는 F모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작곡가였다. 당시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훗날 어마어마한 규모의 연예기획사가 된 곳.


   “이 집 옵션이 없는데, 필요하신 물건이니 옵션으로 생각하셔도 되겠네요(웃음).”


   음악을 한다고 밝힌 우리에게 그는 손수 만든 마이크 *팝필터를 건네며 멋진 미소를 지어보였고, 우린 마치 서울생활의 성공을 보증하는 징표라도 되는 양 감사를 표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기분 좋게 그에게 5백만원 보증금을 건넸다(집주인하고 정확하게 확인도 안 해보고).


   추운 겨울 옥탑집에서-

   벽이 왜 이리도 차가운지, 지금 보일러를 최대한으로 돌려 겨우 이 정도라도 온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세입자는 왜 ‘좋은’ 이 집을 놔두고 1월에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 하는 것일지, 3~4평 남짓 넓이의 그 집에서 남자 둘이 과연 몇 달이나 문제없이 살 수 있을지, 피터팬 카페에 가면 비슷한 가격대에 더 쓸만한 집을 많이 볼 수 있진 않을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도 해보지 않고.


   선해보이는 그에게 돈을 건네고 돌아오는 길.

   옥탑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팝필터 : 파열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이나 음 왜곡 현상을 줄이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설치하는 스폰지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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