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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3. 2020

가계약 할게요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가계약 할게요


   피터팬 카페에 가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집이 많이 올라와있다는 것, 하지만 사진만 보고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니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것, 정말 좋은 집인 것 같으니 한시라도 먼저 봐야 계약을 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것 등등.


   나는 동거인에게 나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고, 집의 조건과 사진을 보고 그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우린 퇴근 후에 함께 집을 보러가기로 했다.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 혹시 계약을 할 사람이 있느냐고 확인해두고 이대역으로 출발.


   집은 설명대로 이대역 근처였다. 5번출구에서 걸어나와 한서초등학교 방향으로 가야했다. 처음에는 얕은 오르막 경사의 평평한 길이었으나 중반에 돌입하니 경사가 조금씩 더 느껴졌다.


   “역에서 5분 거리라고 하지 않았어?”

   “음. 그러게. 10분 정도까지는 괜찮지 뭐.”


   이대역 5번출구에서 한서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으로 ‘낙후된 산동네’의 모습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집, 금방이라도 범죄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곳곳에 붙은 재개발 관련 현수막이나 전단지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 선택이 맞았음을 증명이라도 해야하는 사람처럼 애써 동요하지 않고 걸었다.


   “초등학교 근처였는데 그쪽은 좀 괜찮지 않을까?”


   10분 여 걸었을까, 초등학교 건물이 보였고 우린 한서초등학교 앞에 도달했다. 우리가 보러갈 집은 학교의 후문 쪽에 있었다. 학교를 통과해 후문으로 나오니 몇 채의 건물이 있었다. ‘그 집’으로 보이는 곳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들어오세요.”


   집에는 펜스를 비롯한 애완견 관련 물건들이 많았고, 곳곳에는 강아지털이 날리고 있었다. 집 안에 강아지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방, 화장실, 부엌 등 집 안 곳곳의 모습은 사진과 그대로였다. 건물 밖은 낡아서 가장자리가 마모되고 부서진 조각들이 떨어진 벽돌들과 같은 느낌의 모습이었다.


   이대역에서부터 오던 힘든 길, 낡고 위험해 보이는 동네 분위기, 청결하지 않은 집 상태 등 결격사유는 차고도 넘쳤지만, 이사할 집을 알아볼 때 정해놓은 수칙들은 - 옥탑은 절대불가, 가급적 방 2개, 임대료 상한은 500/35, 위치는 홍대입구에서 지하철역 3~4개 이하인 곳 – 모두 만족시키는 곳이었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 좀 해보자.’


   “집 잘 봤습니다. 연락드릴게요.”


   “괜찮은 것 같은데?”

   “형이 알아서 혀. 방도 2개고 넓긴 하네, 1층이고.”

   “이 금액에 여기보다 나은 곳은 없을 것 같다. 가계약 걸고 가자.”


   다시 돌아가 집 문을 두드렸다.


   “저희 가계약금 걸고 갈게요. 30만원 드리면 되는거죠?”

   “그러시겠어요? 네.”


   그 분의 계좌로 30만원을 보내고, 서로 확인하고 다시 이대역으로-


   이대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길이었지만 왠지 집을 보러올 때보다 길의 경사가 더 가파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탓일거야’ 조금 설레면서도 불현 듯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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