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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14. 2020

옥탑방 안녕

이사일기(2010-2020) - 1. 망원동 (2010.02)

옥탑방 안녕


   누구보다 집을 가장 먼저 보는데 성공하고, 가계약도 깔끔하게 끝낸 듯 보였지만 사실 이번에도 실수가 있었다. 세입자에게 가계약금을 건넨 것. 첫 서울집인 망원동 옥탑방 때와 비슷한 실수.


   간혹 보증금 자체가 소량이거나 집주인이 번거로워할 경우에 세입자끼리 보증금을 주고받는 경우도 보긴 했지만, 그건 아무런 효력도 가질 수 없는 위험한 행위이다. 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지불하고 계약서도 쓰고 이사를 왔는데, 어느 누가 와서 집주인과 쓴 계약서를 떡 하니 내민다면? 군말 없이 물러나야지. 드라마 소재로도 가끔 나오는 부동산 계약사기 이야기.. (계약은 집주인과 하긴 했다)


   그보다 더 황당한 실수가 하나 더 있었는데, 가계약한 집에서 통보한 이사날짜를 받아들고 집주인에게 말했다.


   “저희 사정이 생겨 8월 중순에 이사를 해야 해서요. 다음 세입자 구하는 글은 올려두었습니다.”

   “...”

   “...”

   “내일 다시 통화합시다.”


   뭣이라? 계약기간도 안 끝났는데 집주인에게 나가겠노라고 통보라니. 집주인은 얼마나 기가 찼을까? 계약서는 왜 있는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음이 난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첫 서울 집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짐은 여전히 단촐했다. 각자의 옷, 이불, 개인물건들 약간, 컴퓨터 한 대, 그리고 이젠 옥탑도 아니고 한강과도 멀어져 쓸모없게 될 돗자리와 모기장텐트.


   ‘처음 시작은 열악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거지!’


   다음날 아침. 지옥의 겨울과 여름을 보내야 했고, 남자 둘이 비좁음을 견뎌야 했던 옥탑방을 떠난다는 마음에 출근길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어제 집주인과의 통화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점심시간, 전화기 진동이 울렸다.


   “저기 그 8월 며칠이라고 했죠? 내 조카가 거기로 들어갈 거니까 날짜 정확하게 알려주시고.”

   “아, 네 알겠습니다. OO일입니다. 그럼 그 날 뵐 수 있는 건가요?


   집주인의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저기 그런데, 들어올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네?”

   “생각해보니까 참 어이가 없어서.”

   “...”

   “그 날 오후에 봅시다, 그럼.”


   집주인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사날짜에 차질 없게 다음 세입자가 정해져서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여하튼, 과정은 미숙했지만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1층집으로 간다는 열망이 컸기에.


   정들었던 망원동 옥탑방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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