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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25. 2020

전조증상

이사일기(2010-2020) - 3. 용강동 (2011.04)

3. 용강동 (2011.04) 


 - 전조증상


   서울로 올라온 후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좋은 것들도, 좋지 않은 것들도 있었고, 지방에는 없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도, 혹은 지역과 관계없는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도 있었다.


   2011년 9월~11월 동안 기록해두었던 SNS의 글들을 살펴보니,


2011년 9월 20일 - 오늘 밤 네 마리째의 모기를 잡았다. 어찌 이것들은 죽지도 않고 날 물지도 않고 내 시야에서 자꾸 얼씬거린다. 와서 확 물던가.
2011년 9월 25일 - 서울 와서 두 번의 여름동안 모기걱정 없이 지냈는데 올 가을 들어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2011년 9월 27일 - 내가 손바닥으로 모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친구는 곰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 같다고 했다.
2011년 9월 29일 - 몸이 불러서 위태위태하게 천정에 붙어있던 모기를 파리채로 퍽 하고 때리니 빠알간 자국을 주위에 흩뿌리며 전사. 저건 내꺼겠지.
2011년 10월 05일 - 아니, 모기가 또 있다니.
2011년 10월 22일 – 모기 네 마리(확인된 것만)가 내 주위를 감싸고 빙빙 돌고 있다.
2011년 10월 24일 - 이 시간에 모기 세 마리 연속 원 샷 원 킬. 이제 잘 수 있겠지.
2011년 10월 28일 - 올해 모기는 겨울에도 있을 예정인가, 정말 징그럽구만;;
2011년 11월 07일 - 집에 돌아와서 5분이 안 되는 시간동안 열 한 마리의 모기를 잡았다. 집의 어디가 뚫렸나? 한여름에는 이틀에 한 마리 보이던 집에서,,, 올 가을 모기 때문에 확실히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여름곤충으로만 알고 있던 모기가 9월, 10월, 11월에도 등장하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고 있었다. 주위 지인들의 말을 들어봐도 집에서 모기가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모기가 집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 이전의 모기들은 쌀쌀한 가을밤을 어디서 보낸 것일까?


   모기들 출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했던 나는 그제야 집의 곳곳을 살피게 되었다. 뭔가가 들어올만 한 구멍이나 틈새가 있나.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허술한 집이구나.’


   특히 현관과 창문 곳곳이 낡았다. 큰 구멍은 아니어도 창문이나 문을 잘 못 닫으면 쉽게 틈새가 생겨 모기 같은 작은 생명체들은 쉽게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여름과 늦가을, 그리고 초겨울이 다가오는 시점까지 그 틈새는 우리를 계속 어렵게 했을 것이다.


2011년 12월 06일 - 아아,,, 도저히 이 집에서 겨울을 날 자신이 없다. 또 이사가야 하나.... ㅠ
2011년 12월 09일 - 집이 제일 춥다.
2011년 12월 12일 - 모기 대신 추위를 얻었다.


   모기와 함께했던 날들이 지나니 또.. 서울 첫 번째 집이었던 망원동 옥탑방이 생각날 정도로 늦가을부터 시작된 추위는 정말 대단했다. 서울에서 볼 취업시험 때문에 하루 우리집에서 머무른 후배가 ‘입 돌아갈 뻔 했다’를 연발할 정도로.


   오래된 건물의 꼭대기층 집, 벽과 창틀이 아귀가 잘 안 맞는 집, 보러 갔는데 창문을 비닐로 다 덮어버린 흔적이 있는 집 등은 한 번 의심하고 살펴보도록 하자는 교훈을 얻었다. 서울살이 세 번째 집인데 우린 여전히 교훈을 얻어야할 정도의 레벨 밖에 되지 않았다. 늘 저렴한 가격과 넓이에만 매료되어 다른 것들은 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앞서 이 시기의 SNS 기록을 살펴보니 참 즐거웠던 시간이었을거라 짐작했는데, 쓰다보니 온통 암울한 이야기들 뿐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쓰고 있는 것을 보신 어머니께서 “근천스러운 이야기들 좀 그만 써~” 라고 하실 정도로...


   되도록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기억해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이듬해 구정 즈음에 일어났던 서울살이 동안 내 최악의 사건 때문일 것이다. 3개월 분 월세를 미련 없이 선납하고 집을 그냥 두고 이사해버릴 정도로 정떨어지게 만들었던 이야기...


   여름부터 가을까지 겪었던 이야기들은 최악의 사건을 맞이하기 위한 전조증상이 아니었을지. 딱 한 번만 더 우울한 이야기 하고, 이제 다음부터는 즐거운 이야기들을 해봐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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