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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06. 2018

생전 처음 보는 가족과 함께

181124

용산역에서부터 내려가는 금요일 저녁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는 매주 빠르게 매진된다. 적어도 화요일쯤에는 체크해둬야 안전하게 예매할 수 있을 정도? 용산에서 19시 8분, 영등포에서 19시 16분에 출발하는 열차 말이다.


2~3주에 한 번씩 엄마 집에 내려가는 나, 하지만 대부분 그 사실을 잊는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 목적지에 도착하는 열차만이 남은 상황에서 늘 그것을 깨닫는다. ‘아, 다음에는 꼭 미리 미리 체크해야지.’ 하지만 어김없이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그것을 떠올리고는 후회를 반복하지.


어제도 그 상황은 반복되었고 할 수 없이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게 되었는데, 토요일 아침 티켓을 차지하는 것도 쉬운 경쟁은 아니다. 용산에서 7시 19분에 출발하는 차(비교적 경쟁이 약한)를 예매해놓고, 5시 반쯤 깨서 코레일 어플을 살핀다.

‘옳거니!’
어제까지는 꽉 차 있던 9시 10분에 출발하는 기차에 자리가 하나 났다! 출발 시간 2~3시간을 앞둔 시점에서 이렇게 공석이 생길 때가 있다. 뜻밖의 행운이 내게 2시간 여 추가 아침잠을 선물했다. 7시 반쯤 일어나서 여유 있게 준비하고 용산역으로.


용산역에서 강경역까지, 꽤 긴 거리를 가야 했으므로 홀수번 좌석(창가)을 예매했으면 좋으련만, 우연히 한 자리가 난 것을 차지한 셈이므로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통로 쪽 좌석에 앉았고, 옆 좌석은 빈 채로 가게 되었다.
‘옆 자리는 영등포역에서 채워지겠군.’


분명히 옆 좌석을 예매한 사람은 있는데 용산역에서 아무도 타지 않으면, 최소한 다음 역인 영등포까지는 그 자리가 비어있는 채로 가게 된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책을 읽는 등의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밖을 바라보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옆 자리에 앉게 될 사람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된다.


‘내가 몸집이 크니까 몸집이 크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다리를 쫙 벌리는 등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풍경을 살피다 보면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내 앞 좌석에 앉을 사람이다. 내 앞에 앉을 사람이 좌석의 등받이 상태에 변화를 주느냐, 준다면 얼마나 뒤로 젖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네 번 기차를 탄다면 내 앞자리에 앉는 세 사람 정도는 보통 의자 등받이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간다. 하지만 25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의자를 뒤로 젖혀버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게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조금 문제가 된다.


오늘 이 사실을 내가 잠시 잊은 이유는 내 앞자리도 빈 채로 영등포역까지 왔기 때문이다. 내가 기차를 탈 때 신경 쓰이는 점들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았지만 사실 실제상황에서는 단 몇 초 만에 생각하거나 또는 벌어지는 일이어서 이렇게 지난한 과정 혹은 걱정은 아니다.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며 책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내 오른쪽을 지나는 사람들의 신발들이 내 눈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와중에 아기엄마로 보이는 이가 두 명의 아이를 내 앞 좌석에 앉혔다. 의자에 앉히기 전에 잠깐 본 기억으로 아이들은 순해보였고, 5~7살 정도의 나이였다. 적어도 앞에 앉을 사람으로 인해서 나의 강경역행이 방해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옆 자리로 왔다. 그녀의 자리는 아이들의 옆 자리가 아닌 뒷자리였던 모양이다. 일어선 채로 앞에 앉은 두 아이에게 이것 저것 챙겨주곤 자리에 앉았다.

“혹시 창가에 앉으시겠어요? 자리 좀 바꿀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내게 더 편할 일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난,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익산이요.”
“아, 제가 먼저 내려서요.”
하며 나는 통로 쪽 좌석을 유지했다.


익산역이면 내가 내릴 강경역하고 1, 2개 역 밖에 차이도 안 나고, 아무래도 이분께서 통로 쪽에 앉으시는 것이 아이들을 보기에 더 편할 것은 분명했다. 계속 불편하고 불안한 공기가 유지되던 중에


“이쪽으로 오시는 게 더 편하시겠어요?”
“네, 그럼 제가 그쪽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창가를 바라보면서 가면 내게도 더 좋았다.

그런데,

“저기,, 앞좌석을 돌려서 아이들과 마주보게 해도 될까요?”
“아..”

‘나는 이들과 아는 사이도 아닌데...’

잠깐 고민을 하다가, 아주 어린 아이들이고 큰 불편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내가 자리에 앉아있는 채로 앞좌석을 돌리려다 보니 좌석이 돌아가다가 앉은 내게 그만 걸리고 말았다. 내가 일어나야만 좌석이 깔끔하게 돌아가서 마주볼 수 있게 되는 것.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무사히 좌석을 돌리는데 성공했고, 가는 중에 내 반대편에 앉은 아이의 발이 내 무릎과 다리에 이따금씩 닿았지만 그 때마다 아이 엄마의 중재로 인해 상황은 제지되곤 했다. 



내 앞에는 두 명의 귀여운 아이들이 있고, 내 옆에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엄마가 타고 있는 상황. 별스러운 건 아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아 재미있다고 느껴졌고, 나는 혼자서 피식 웃음을 보였다.


나는 이석원님의 책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읽고 있었다. 요즘 글쓰기 모임을 통해 동기부여가 된 상황에서 나의 것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고민도 하면서. 내 앞에,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아이 둘은 이따금씩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살짝 웃음을 지었으나, 아이들은 내 웃음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흥.


서대전역에 도착하자 주변에 빈자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을 모두 일어나게 한 뒤 앞좌석을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는 그 옆 좌석에 앉았다. 비로소 나도 몸과 마음이 편해진 상태가 되었다.


잠시 눈을 붙여 잠들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보니, 앞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들을 조용히 시키려 연신 노력 중이었다.

‘참 조용한 아이들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험상궂게 생긴 이 아저씨를 마주하고 영등포에서 서대전까지 오는 두 시간이 너희에게도 편한 시간은 아니었겠구나. 이렇게 장난기 많고 활발한 아이들이.. ㅎㅎ


이윽고 기차는 강경역에 도착했고, 나는 아이들 엄마와 아이들에게 살짝 눈인사를 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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