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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03. 2020

일자리를 구하다

이사일기(2010-2020) - 5. 성산동 (2012.07)

근거 없는 여유로움의 원천


   한동안 큰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2011년 말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기타학원 강사, 대학교 청년사업단, 방과후학교 강사 등의 일자리를 전전했으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는 아니었고 음악 작업에 매진하고자 나름대로 택한 방법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내면으로 침잠해 깊이 탐구하고, 즉각적인 타인의 피드백을 기대할 수 없는 작업은 내게 영 맞지 않았던 것 같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현재 내가 하는 분야의 일에서 느끼는 의욕과 성취감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지금이라도 내게 꼭 맞는 일을 찾아서 다행이고, 세상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어버린 셈.


   하지만 대학교 재수, 교통사고, 군대 등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어버린 나는 애초에 천천히 가기로 했기에 모든 것에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순간에는 조급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말하는 건축가



   2012년 4월 처음 만난 ‘말하는 건축가’는 내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그 시점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부의 축적이 아닌 문화테크다.’라는 말이 콕 박혔다. 몇 달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던 그것은 그해 7월부터 시작된 세종문화회관 문화예술매개자(ACIP) 1기 과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름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면접에서 나는 ‘말하는 건축가’의 내용을 인용하며 그런 생각과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고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아직 유효한 결심이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의 궁극적인 형태에는 도달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도전!


   6개월 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경험했고, 나의 최종적인 작업과 결과물은 종로 문화지도가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지도와 관계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성산동의 이 옥탑방에 사는 동안 문화예술매개자 과정이 끝나고 지도회사에 취직하는 것까지 결정되었다.

 



비좁은 옥탑방에서, 우리는


   문화예술매개자로 6개월간 활동하면서 즐거운 활동들이 많았다. 그중 내가 속해있던 *COP에서는 ‘나홀로족의 동네친구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혼자 살고 있던 독거청년 친구들이 각자 5,000원어치의 식재료를 갖고 모여 그 재료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소통하는 프로그램. 대방동 어디에선가 한 번 진행하고 그 결과가 좋아서 2차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장소 섭외가 마땅치 않았다.


   2차 장소는 결국 내가 사는 옥탑방에서 하기로 했다. 일로 만난 지인들에게 사는 곳을 공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미 ACIP 단가 녹음을 위해 한 차례 개방한 일도 있어서 나는 주저 없이 많은 이들을 초대했다! (어차피 외로운 밤)


   정확한 숫자가 생각나지 않지만 좁은 4~5평 방에 열 명이 넘는 이들이 모였다. 밥알 각각을 계란으로 코팅해버린다는 볶음밥을 시작으로(요리왕 비룡st), 다들 음주, 게임, 이야기와 함께 그 겨울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 많던 이들의 목소리와 열기를 옥탑방의 창문과 바람이 책임지지 못해 집주인에게 전화가 불나게 왔다. 우리의 쪽수를 보시고 큰 말씀은 없으셨으나, 이튿날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몇몇 친구들과는 이튿날 아침 함께 나가서 해장국을 한 그릇 했고.



   교육과정 중의 하나로 기획하고 진행한 것이었지만 참 재미있었다.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있을까? 그런 옥탑방도?



*COP :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비공식적ㆍ자발적ㆍ소규모 연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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