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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04. 2020

슬픔치약 거울크림

이사일기(2010-2020) - 5. 성산동 (2012.07)

정확한 기억은 기록에서


   정확하게 말하면 이 글의 시점은 성산동 옥탑이 아니고 그 전인 불광동 집에 살고 있을 때가 맞다. 성산동 옥탑으로 이사한 날짜를 보니 2012년 7월 9일이고, 이 행사 날짜는 7월 7일. 한 달 전쯤부터 준비를 시작했으니 마땅히 성산동 집에 살기 전이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하물며 8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니 이해해주시오.. (2012년 7월의 페이스북을 뒤져보니 다 기록되어 있다. 페이스북이 가끔 좋을 때도 있다)


   그 때 즈음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내게도 잘해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활동을 함께 해볼 것을 제안하거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하지만 대부분 내가 그것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진지하게 임하지 못했거나, 애초에 함께 할 능력이 안 되었거나 그랬다. 내가 계획한 무언가에 잘 따라와주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내가 답답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민폐를 끼치고 있었으니.


   각설하고, 특별했던 기억을 하나 떠올려본다.



한 여름 밤의 시 부르기


   2012년 6월 공연도 변변찮은 일거리도 없었던 때, 우연히 알게 된 일러스트레이터 겸 뮤지션 ㅂㄹㅇ님이 함께 공연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 행사는 ‘한 여름 밤의 시 부르기 :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슬픔치약 거울크림도, 김혜순 이라는 시인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 여전히 살아있는 그날 행사의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events/253079181472503


   시낭송회 공연이라..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내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공연이라는 참 설레는 말들, 일들.



한 여름 밤 도시의 옥상에서 시를 불러낸다면... 가장 부르고픈 김혜순님의 시, 그 열 번째 시집 ‘슬픔치약 거울크림’ 지인들과 재미나게 하루 밤 준비하다 조금 판을 키웠습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그날 행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적힌 ㅈㅈㅇ선생님의 글. 행사의 성격에 대해 조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문래동 그리고 공연


   6월 초, 행사에 나를 초대해주신 ㅂㄹㅇ님이 멜로디를 붙여본 곡들을 함께 연습해봤다.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음악도 했던 그녀는 김혜순 선생님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고, 함께 연주하며 불러봤다. 아직도 멜로디가 기억나는 듯. 그리고 내게도 선생님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어 불러볼 것을 주문하셨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겠노라고 했다.


   일주일쯤 후 행사의 주인공이신 김혜순 선생님, 기획하신 ㅈㅈㅇ 선생님, 그리고 이날 함께 할 래퍼 ㅁㅅ님 등과 함께 식사 겸 술자리를 함께 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사인해주신 책을 찍은 사진과 그 책이 내게 있는 것을 보면.


   시부르기 행사를 잘 해볼 것을 결의했고, 각자에 대해서 이런저런 야이기도 나누었다. 모두가 멋진 사람들, 이른바 힙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말들과 분위기를 나도 느끼고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행사 당일 문래동에 처음 가보았다. 2012년 당시 문래동, 신세계와도 같았다. 1층은 공장인 철공소 건물의 3~4층에 작가들의 작업실이나 전시공간이 있었고, 금속과 예슬작품들은 서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사가 이뤄질 공간은 LAB39였는데, 2층과 3층 그리고 옥상이 전시 관련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홍대, 합정 등지 클럽에서 공연만 해봤지 이런 공간에는 처음 와봤던 내게 이런 환경과 사람들, 행사들은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2층과 3층에서 열린 전시와 행사들에 참여하며 동네의 분위기도 익히고 새로운 것들도 많이 접했다. ‘음, 끄덕끄덕. 좋은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군요.’


   옥상에서 연습을 좀 하고, 행사는 시작되었다.




2012년 8월 25일
김혜순 시인 낭독회공연 때 문래동 옥상에서 따뜻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불현듯 행복의 포인트를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이후 나의 일기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노래나 연주를 잘 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 그날 분명히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남아있는 것이 몇 장 안 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 낭송회는 적당히 진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옥상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주위 건물들 모습에 묘하게 오버랩 되었다. 공연은... 나만 빼고 ㅁㅅ님과 ㅂㄹㅇ님은 좋았다. 매번 하게 되는 후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나도 김혜순 선생님의 시 「그녀의 레이스와 십자수에 대한 강박」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었는데, 쑥스러워 차마 공연 때 하지 못했다. 그 시를 지으신 선생님 앞에서 차마 그것을 부르기가 너~~~무 쑥스러웠다 그때는.


  그리고 이후에 선생님의 시를 느껴보고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막연히 좋은 느낌 외에 뭔가를 발견해내지는 못했다. '시'를 읽고, 느끼는 사람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일은 선생님의 시집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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