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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05. 2020

핑크문, 핑크타임즈

이사일기(2010-2020) - 5. 성산동 (2012.07)

핑크문에서


2013년 3월 17일 - 전처럼 다시 공연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제 확실히 손에 잡히기 시작했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요인은 의외로 간접적인 것들이다.
가령, 합주하고 공연장이 문 열 때까지 기다리면서 멤버들과 보내는 시간이라든지, 다른 팀 리허설 하는 거 보면서 우리 팀 리허설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든지, 같이 공연하는 팀들과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라든지, 다른 팀 공연 끝나고 "잘 봤습니다." 주고받는 인사라든지, 뒤풀이 때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든지, 뭐 그런 것들. 오늘 즐거웠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홍대 핑크문’을 검색하면? 지금은 연남동에 있는 고기집이 나오는데, 거기 말고 과거 홍대 정문 쪽에 있던 공연장 겸 맥주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와우산로22길, 홍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좁은 길목 어딘가 지하에 있는 공연장. 그해 2월에 했던 복귀 공연(?) 이후 오랜만에 두 번째로 했던 공연, 바로 그 곳이었다.


   글의 서두에 있는 공연 날 나의 일기처럼, 한동안 내게 결핍되어있던 걸 채워준 날이었나보다. 좋아하는 팀들과 함께 공연을 했고, 또 친한 사람들 여럿이 보러 와주었고, 우연히 지인을 만나기도 했던 특별했던 날. 더 없이 행복했던 날.


   공연은 보통 저녁에 하지만 만나서 합주도 하고, 리허설도 하고, 밥도 먹고 등등 그런 시간들이 있어 공연날에는 반나절을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우리 팀 보컬 멤버는 전주에서 올라와서 원정 행사를 치르는 입장이었으니.. 오랜만에 상봉도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꽉 채워 보냈던 하루.


우리 게으른오후(좌측은 로켓트리 ㅇㅎㅈ누나) / 권우유와 위대한 항해


   나의 동거인이었던 멤버 DS군은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고 보컬 JH, 객원 키보디스트 BY,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하는 공연이었다. 지난 2월에 했던 공연 이후로 한 달 만에 다시 뭉친 우리는, 마치 처음 밴드를 하는 마음 같기도 하고, 새로운 기분이었다.


   저 위에 적어둔 일기 속 기억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특이하게도 사소한 것들이다. 공연을 잘 했거나 못 했거나, 사람들의 많은 환호를 받았거나 그러지 못 했거나, 그런 것들 말고 보컬과 키보디스트 멤버가 즐겁게 옷을 고르던 장면, 근처에 막 생겼던 ㅈㅎㄷ의 햄버거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맛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들, 같이 공연했던 팀들과 나눴던 쓸데없는 이야기들 등이 기억에 남는다.


   진짜 행복하고 중요한 시간들은 그런 사소한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들 때가 많고..



함께 한 형누나들과 우리의 지인들


'권우유와 위대한항해'의 권우유님

   그날 공연을 함께 한 팀은 권우유와 위대한 항해, 그리고 로켓트리였다. 서울에서 공연하며 우리가 친하게 진했던 팀 중에는 손에 꼽는 팀들이다. 전부다 형, 누나들. ㅎㅎ 지금 돌아보면 정말 우리를 많이 챙겨줬고, 이것저것 함께 했다. 지금도 함께 음악활동을 하는 동료였다면? 여전히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있을 거다.


   이날의 공연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의 컨셉과 제목, 방법 등을 함께 고민하고 정했던 기억으로 보아 핑크문에서 기획한 공연에 우리를 섭외한 것이 아니고, 팁들이 직접 기획해서 핑크문에 제안해서 했던 공연인 것 같다. 오랜만에 형누나들과 함께 공연할 생각에 정말 설렜던 기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로켓트리의 키보디스트 ㅇㅎㅈ누나는 우리의 공연과 권우유와 위대한 항해 공연에서도 아코디언을 연주해주기도 했고, 공연 끝나고 뒤풀이를 하며 더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우리팀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 우리의 지인들도 고맙게 공연을 보러 와주었다.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은 ㄱㅎ님, 그리고 지금은 부부가 된 대학교 동아리 후배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전 직장 동료까지.. 




   어떤 이유 때문에 작은 하나하나가 시간 순서대로 다 기억나는 하루가 있는데, 7년도 더 지난 그날이 내겐 여전히 그렇다. 특별히 그날은 행복한 기억으로. 지금 핑크문은 사라졌고, 우리 게으른오후도 로켓트리 형누나들도 이제 팀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있어서 좋다. Pink Moon이라는 공간에서, Pink했던 행복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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