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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08. 2020

헤드라이너 아닌 오프닝밴드

이사일기(2010-2020) - 0. 들어가며

2019년 '홍합망, 10개의 지도와 이야기들' 전시 컨텐츠 중 하나.
시점 상 이사일기(2010-2020)의 첫 챕터인 '0. 들어가며'에 넣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싣습니다.


   우리 팀 게으른오후가 상경하기 이전인 2008년 여름, 우린 한받(야마가타 트윅스터)님 섭외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군인 말년휴가 중이었고, 보컬 JH양은 아직 함께 활동하기 전이었다.


   어쩌면 모든 서울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공연을 한 곳은 지금은 사라진 서교지하보도. 자세한 사전 설명을 적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그곳은 추억의 공간이자 되살리고픈 곳일테니 생략하고.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들만 떠올린다면,

 

전주에서 서교지하보도까지
그날 공연 안내 (사진 - humanvirus.tistory.com/9)

   2008년. 그저 서울에서 공연 한 번 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지금보다 더) 전주 촌놈들이었던 우리는 아주 드물게 온라인상으로 서로의 음악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한받님의 섭외로 서울 공연을 하게 되었다(프린지페스티벌 진식이의 1020).

 

   가을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여름날, 동석 군과 나는 건반을 잘 치는 후배 한 명을 꼬드겨 동아리방에서 몇 차례 연습을 한 뒤 서울 공연을 결의했다.


   동석군은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 나는 학교 복학을 앞둔 군대 말년휴가 중의 일.

 

   어설픈 몇 곡을 준비하며 우리는 참 용기가 가상했다. 각자의 기타와 집에 보관되어 있던 오래된 다이나-톤 키보드를 들고(키보드 다이도 함께)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고, 난생 처음 홍대앞으로 향했다.

 

   우린 아마도 홍대입구역이 아닌 신촌역을 통해 서교지하보도로 향했다고 기억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신촌역 8번 출구로 나와 와우교를 건너고, 산울림소극장을 지나 사람들이 많던 거리 몇 개를 지났다.

  

   프린지페스티벌 문구가 적힌 광고들이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그제서야 실수 없이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는 홍대앞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랜드마크였던 '청기와주유소' 사거리에 도달했고, 공연할 곳은 우리의 발 아래, 지하공간이었다. 서교지하보도.


<2019 홍합망, 10개의 지도와 이야기들 전시 컨텐츠 중 하나, 디자인 이규진님>



헤드라이너 아닌 오프닝밴드


   우린 첫 번째 공연 순서, 즉 헤드라이너- 가 아닌 오프닝 밴드였다. 연습하고, 합주했던 기억들을 부단히 떠올리며 실수하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홍대앞을 둘러보거나, 분위기를 즐기거나? 그건 다른 사람들의 몫.

 

   우린 한받님을 먼저 찾았다. 평소같지 않게 한받님께서는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타임테이블에서 어색한 이름을 발견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나와 아먀가타트윅스터님 / 게으른오후 + 동아리 후배

  

   이후에는 일상처럼 느껴졌던 나의 서울공연이었지만, 당시 서울에 있던 내 전주 친구들에게 그 자리는 큰 사건이었다. 친구들은 일찌감치 자리하여 나를 응원해주었고, 우린 난생 처음 보는 밴드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공연 현장 사진들, 풋풋하다...


   노란색 벽, 그리고 어떠한 규칙이나 가지런함 없이 나열되어 있던 그래피티들, 자유롭고 멋져보이던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또 지나치던 풍경 속에서, 우리의 공연을 마쳤다.

 

   멍해지던 머릿속, 그리고 기타를 치고 있던 내 손과 마이크, 그리고 이따금씩 내 친구들을 바라보며 편히 둘 수 없던 내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나도 관객이 되어 내 친구들 속으로, 관객석 속으로 향했다. 우린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느낄 수 있는 건강함과 풋풋함을 사람들에게 주었나보다.

  

   이어서 부나비, 야마가타트윅스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머머스룸, 프렌지, 불길한 저음과 같은 밴드들이 공연을 이어나갔다. 당시 한받님을 아마츄어증폭기로만 알고 있던 동석군과 나는 어리둥절! 반복되는 멜로디와 몽환적인 느낌의 비트. 나도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다른 팀들의 그날 공연 모습 (사진 - humanvirus.tistory.com)

 

   이후 공연은 점점 더 무르익어갔고, 공연의 막바지에는 경찰관 세 분이 방문하시기도 했다. 우리는 어리둥절,, 처음 보는 광경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https://youtu.be/s3VvSR8aC4o

전시 영상 컨텐츠


 


 

   무려 12년 전 이날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홍대라는 곳에 난생 처음 와서 만난 사람들과 여러 가지 감정들. 이후 10여 년 동안 내가 지겹게 드나드는 곳이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그날의 기억을 조심스레 끄집어내 보았다.

 

   그 즈음과 지금 홍대앞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홍대입구 앞 사거리는? 횡단보도가 생기면서 폐쇄되버린 서교지하보도는?(도로교통법 상 횡단보도와 지하보도가 함께 있을 수는 없다고 함) 아직 묻어버린 것은 아니고 입구만 막아놓은 상태라 들었는데, 나의 기억들은 여전히 그 지하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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