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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09. 2020

세검정

이사일기(2010-2020) - 6. 홍은동 (2013.05)

토이 1집의 연주곡


   유희열의 프로젝트 밴드 ‘토이’를 중학교 때부터 참 좋아했다. 방송에 주로 나온 것은 2집 때부터여서, 그들의 1집은 대학교 때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알게 된 이후로 1집을 참 많이 들었는데, 앨범에는 인상적인 연주곡이 하나 있다. 그 제목은 바로 ‘세검정’.


https://www.youtube.com/watch?v=IECRWjBmERg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정자.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김류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모의하고, 거사 후 이곳의 맑은 물로 칼을 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음백과 중)


   ‘세검정’이라는 단어를 나는 토이의 앨범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정자 이름이었다는 것도, 저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었지. 그리고 세검정이 있는 일대를 부르는 지명 이름처럼 쓰이기도 한다. 청와대와 가까워 개발이 덜 되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곳. 최근 몇 년 TV에서도 프로그램 배경으로 조금씩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곳 세검정은 서울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가 많다. 그러니 지방출신인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토이의 음악 제목으로만 알고 있다가 곡 설명을 보고 ‘막연히 어떤 곳이구나,’ 하고만 짐작했던 곳.



세검정은 이런 곳

 

어느해 봄, 홍지문 근처에서 세검정 방향을 바라본 하늘

   그런 세검정을 드디어, 집을 보러 온 길에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남들처럼 부동산 투자나 고급 저택을 알아보러 간 것은 아니고, 순수한 거주 목적의 저렴한 전셋집이 세검정 인근 홍은동의 산기슭에 있었기 때문에.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하다고 한 집이었기 때문에.


   인근에 지하철역이 없어서 출퇴근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세자금대출로 월세를 아낄 수 있다면, 집 컨디션만 괜찮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홍제역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유진상가를 지나 세검정로로 진입해 좌우로 멋진 풍경을 선사했다. 서울에서는 지금껏 잘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홍지문·옥천암’이라는 이름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다리를 하나 건넜고, 집은 차가 올라갈 수 없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래서 저렴했구나.’


   이유 없이 저렴한 집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지만(언덕을 올라야 한다는 설명은 없었기에), 버스에서 내려 바라본 주위 풍경은 정말로 근사했다. 홍제천과 인왕산 자락이 만들어내는 멋진 모습과 내부순환로의 하부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광경에 그저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나는 연신 감탄했다. 집에 도착, 집 안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설명도 들었다. 집주인은 선해보였고, 상식적인 분 같았다. 방 두 개에 부엌도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 화장실에 세면대가 있었다! 이전 성산동 옥탑에도 세면대가 있었지만 정말 열악하고 볼품 없었는데 이 집은 화장실도 넓었고, 세면대도 정상(?)이었다(저렴한 서울집에 세면대의 유무는 한 차원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


   언덕 때문에 대문 앞에 차를 댈 수 없는 점,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다는 점 등 열악한 점이 많았지만 수려한 주변의 풍경 때문에 나는 집을 보고 나오자마자 이미 이사할 것을 결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집 잘 봤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집을 보고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나는 벌써 ‘그 연락’을 하러 전화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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