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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1. 2020

나의 출퇴근, 자하문로와 홍지문

이사일기(2010-2020) - 6. 홍은동 (2013.05)

자하문로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이곳에 살 때 나는 청담동에 있는 지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풍경에 취해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보니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와의 거리에 너무 무신경했던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늘 방법은 있고 또 언제나 회사와의 거리보다는 집의 컨디션과 주변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 (홍지문·부근)


   집에서 나와 홍지문·옥천암 정류장에서 7018번 버스를 타거나 상명대입구 정류장까지 나와 1711, 7016, 7022, 7212 버스를 타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내려 광화문역 8번 출구로. 상일동·마천행 5호선 열차를 타고 왕십리역으로 가서 분당선으로 환승,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걷는다.


   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경로였지만 나는 ‘서대문 08번 -> 홍제역 -> 신사역 / 압구정역 -> 버스 -> 회사’의 경로는 단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다. 역시 두 번의 환승이 필요해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출근길 버스를 타고 ‘세검정교차로 -> 자하문터널(1711, 7016) / 윤동주문학관(7022, 7212) -> 서촌 -> 경복궁 ->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는 코스를 하루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윤동주문학관 / 클럽 에스프레소


   그곳은 서울의 중심이면서도 경복궁 부근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7018번 버스는 경기상고 학생들 때문에 출근길이 매우 비좁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시간을 살짝 조절하여 그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는 방법도 있었기에(거의 조절하지 못했지만).


   세검정교차로에서 경복궁까지 이르는 자하문로를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달렸다.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내가 정말 서울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아침에 매일 서울의 중심을 달리고 있다는 느낌도. 사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냥 좋아서’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선택할 수 있는 특정한 공간이나 경로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이후에 그렇게도 홍대-합정-망원을 갈망한 걸 보면).



홍지문을 지나 퇴근하는 사람
KT광화문지사 정류장에서 바라본 세종문화회관

   그럼 나의 퇴근길은? 반대의 경로를 생각하면 쉽다. 회사에서 강남구청역까지 걷는다. 강남구청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왕십리로, 왕십리에서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역으로.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나와 KT광화문지사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퇴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정말로 서울의 중심에서 일하다 퇴근하는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여기서 북쪽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 무리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뭐가 이리도 특별한 게 많은지)



   이곳 버스정류장에서는 몇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갈 수 있는 7018번 버스, 자하문터널을 지나 세검정교차로에서 내리는 1711, 7016번 버스,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세검정교차로에서 내리는 1020, 7212번 버스가 있다.


   버스 번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세부 경로에 내가 민감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길이고,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7018번 버스는 세검정교차로에서 좌회전, 홍은동으로 간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홍지문·옥천암 버스정류에서 내릴 수 있다. 1711, 7016, 1020, 7212번 버스는 모두 세검정교차로에서 우회전 혹은 올라가기 때문에 상명대입구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세검정교차로 부근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 나는 7018번 버스 보다는 나머지 번호의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것을 더 선호했는데, 바로 세검정교차로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 때문이었다. 해지는 저녁 즈음 상명대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세검정교차로로 접어들며 만나는 절묘한 분위기,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주변의 포근한 풍경에 어둠이 살며시 내려앉는 분위기,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위로.


홍지문


   세검정교차로에서 세검정로와 홍제천변 사이에 난 작은 길로 내려와서 걷는다. 멀리 홍지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에는 맛있는 중국집 팔선생과 상명대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홍지문을 향해 걷는다. 숙정문이 폐쇄되고 실질적인 북대문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홍지문. 퇴근길에 나는 매일 그곳을 통과해 집으로 걸었다. 홍지문을 통과하는 것은 나에겐 하루를 마치는 의식과도 같았다.



p.s) 퇴근길에 7018번 버스를 잘 타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윤동주문학관을 지나서 오는 1020, 7212번 버스를 타면 부암동주민센터 부근에서 자하문터널 상부로 내려오는 길목 중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었다(직접 타보고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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