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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3. 2020

옆집 꼬마와의 결의

이사일기(2010-2020) - 6. 홍은동 (2013.05)

계단 위 정돈된 세계


140118 - 여행이 취소된 주말의 시작이 고즈넉하다. 창문 밖으로 초등학생인 듯한 옆집 꼬마가 뛰어노는 소리가 즐겁다. 몇 주 전 인상적이었던 그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서 여기 기록해 둔다.

「언젠가 그의 아버지와 그를 동시에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고, 그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저씨 집에 와서 놀다 갈래?' 라는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그와 나는 눈짓으로 다음에 또 볼 것을 결의하고 나는 집으로, 그는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사 온 이듬해 겨울 기록해둔 메모를 보니 그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전 글들에 밝힌 것처럼 홍은동 집은 산기슭에 있었고, 버스정류장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계단을 2~3분쯤 올라야 닿을 수 있었다. 계단 위 정돈된 언덕 위에는 3~4개의 건물이 있었다(일곱 집). 그중 하나가 내가 살던 곳이었다(건물이라 하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9~10평의 원룸 혹은 투룸이 두 개씩 이어져 있는 아담한 건물들).


   건물들은 각이 잡힌 직선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고, 땅의 구획과 모양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곡선으로 된 부분도 있었고, 모양에 따라 융통성 있는(?) 형태들을 하고 있었다.



언덕 위 사람들


   이렇게 일곱 집이 모여 있는 곳. 서로 이웃처럼 사이좋게 지낼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가 마당(?)에서 얼굴이라도 마주치려 하면 바삐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즐겁게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숨어버리는 분위기가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그런데 그중 유난히 여유로움을 풍기는 집이 하나 있었다. 평지에서 계단을 올라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첫 번째 집이었는데, 그해 더운 여름에는 오전과 오후에 늘 대문을 열어놓고 모기장을 쳐놓으시기도 했고, 출퇴근길에 마주치면 주인아저씨와는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상술한 메모 속 바로 그 꼬마가 이 집에 살았다. 집 앞까지 차가 들어올 수도 없고, 계단을 올라야 하는 언덕 위에 있는 집. 넓어봤자 10평 정도 되는 투룸. 부모와 꼬마가 그 집에 살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거의 없었고.


131217 - 퇴근길에 7018 버스에서 내린 오늘은 뒤태가 분식을 파는듯한 트럭을 만났다. 우리 동네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번개같이 앞을 확인했으나, 뜻밖에도 트럭에서는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점포정리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어린 아이의 아빠인듯한 사람이 약간 취한 눈으로 장난감들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분식 파는 트럭인 것보다 더 좋았다. 랄랄라.


   맨 위에 적어둔 메모보다 두 달 전에 내가 남겼던 메모인데, 이 메모 속 주인공 아빠가 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 집 꼬마의 아버지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 꼬마와 아저씨가 있던 그 집은 얼마 후 이사했다. 이사하는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던 모습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키지 못했던 꼬마와의 결의가 떠올랐고, 그 가족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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