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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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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일기(2010-2020) - 6. 홍은동 (2013.05)

다음은 무엇입니까?


   좋은 계절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서울 온 뒤로 이맘때의 계절이 되면 늘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전기장판 켜놓고 이불을 뒤집어 써야 괜찮을 정도로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했고, 보일러는 켜봤자 별 소용도 없었으니.

   하지만 이번 홍은동 집은 비싸지도 않은데 주로 생활하는 큰방의 한 면은 옆집에, 그리고 나머지 두 면은 부엌과 작은방에 둘러싸여 있어서 별로 춥지 않았다. 보일러를 안 켜도 잘 때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괜찮아서 좋았고, 많이 추운 날에도 보일러를 켜면 금방 따뜻해졌다.


   12월이 되도록 전기장판을 안 꺼냈는데도 괜찮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서울 같지 않은 곳이지만 불편함도 익숙해졌고, 동네도 정들었고, 큰 일 없으면 처음으로 계약기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집이었다(못 채웠지만). 이제 시작인 겨울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이집에 살던 동안은 잠시나마 주거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었다. 적어도 더위와 추위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이사를 생각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찾아온다. 처음부터 그 두 가지 모두가 문제였을 수 있지만 더 큰 문제 때문에 가려져 있던 한 가지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해결된 한 가지 문제 이후에 등장한 두 번째 문제 때문에 가려져있던 세 번째, 네 번째 문제들이 어딘가에 자취를 숨기고 있다. 그것은 매번 겪게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는데 하나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성장의 문제일 수도 있고, 비슷한 것들이 순서대로 내 앞을 가로막는 반복의 문제인 경우도 있었다.



한 문제의 해결, 그리고 그 다음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자연스럽게 내게 찾아온 문제는 나와 관계된 여러 가지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2013년과 2014년 경계의 겨울동안 내게 찾아온 문제는 하고 있는 일에 관련된 것.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던 회사 일은 어느정도 적응했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이 역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는 없는 일. 용역회사로서 늘 발주처에서 원하는 것들을 해야 하는 숙명이 있었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주문을 받아서 하는 일이지만 지도 자체를 내가 좋아했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게 성취감을 느끼며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클라이언트를 리드하면서 작업물에 조금씩 내 의도를 심어놓는 일. 그러면서 나도 더 성장하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늘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 또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정부기관이었기 때문에 컨텐츠 제작방향의 결정권은 높은 자리에 있는 꼰대들이 쥐고 있었다. 잘 만들어놓고도 결국 결정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의 의견대로 결정이 되어버리니 결론은 뻔한 것.


   그런 순간들은 조금씩 일의 재미를 떨어뜨렸고, 반복되는 경험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도 '그냥 쉽게 쉽게 가자'는 안전한 선택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일은 재미 없어진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순간이 시작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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