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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채기 Jun 26. 2023

사람의 눈을 보면 알아


사람의 눈을 보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눈만 보고 저 사람이 관종인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눈만 보고도 저 사람은 눈치를 많이 보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인간의 눈에 대해 조금만 알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궁금하시다고요? 특별히 제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시다면 지나가 주세요.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주위에 거울이 있나요? 당신의 눈을 한번 봐보세요. 어떻게 생겼나요? 크고 이쁘다요? 네 좋으시겠습니다. 작고 못생겼다고요? 우리 함께 터키로 갑시다. (터키에서는 작은 눈을 이쁘다고 해준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분명 흰자가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눈동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에게는 흰자가 있을까요? 흰자가 있다는 것을 의아해 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그러나 의아해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장류 중 오직 인간만이 흰자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고릴라와 원숭이는 흰자가 거의 없습니다. 



흰자는 인간만의 특별한 설계입니다. 무엇을 위한 설계일까요? 바로 흰자와 눈동자를 명확히 구분해 주기 위한 설계입니다. 명확히 구분하면 뭐가 좋냐고요? 눈동자가 어디를 쳐다보는지 명확하게 해주기 때문에 좋습니다. 즉, 인간이 흰자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 남자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 또는 당신이 수영장에서 선글라스를 껴야 했던 이유. 바로 흰자 때문이죠. 그런데 어째서 흰자가 진화했어야 했을까? 어디를 쳐보는지 왜 알아야 했을까요? 바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어디를 쳐다보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너가 재밌게 보는 것을 나도 보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고, 내가 노려보는 것을 너도 노려보면서 위기를 극복합니다. 무리 생활을 하기 위해서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죠. 그렇게 무리 지어 생활하는 우리 인간은 새하얀 흰자를 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어느 정도 급인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항상 계산하는 동물로 진화하고 말았죠.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은 지위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를 생각해 보세요. 순진한 사람들은 제일 강한 물고기가 무리의 가장 바깥에서 헤엄칠 거라고 상상합니다. 약한 물고기들은 안쪽에서 보호받고 있을 거로 생각하죠. 그러나 실상은 반대입니다. 제일 크고 건강한 물고기들이 안전한 안쪽을 차지하고 병들고 약한 물고기들이 위험한 밖으로 밀려납니다. 상어가 오면 그들은 밖에 있는 허약한 물고기를 희생시키고 무리를 보존합니다. 이게 바로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의 기본 생존 전략입니다. 그리고 같은 무리 동물인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가 덮치면 가장 먼저 죽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가난한 사람, 가장 병들고 아픈 사람들이 먼저 죽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발생하거나 경제적 위기가 닥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가 오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부자들은 비가 와도 무전기를 들고 재밌게 놀지만 주인공 가족들은 집을 잃고 거리로 나오게 됩니다. 상어가 찾아오면 먼저 희생되는 건 무리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입니다. 무리 동물에게 있어서 낮은 지위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높은 지위는 모든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우리는 흰자를 가진 인간은 언제나 지위를 신경 씁니다. 마치 무리의 안쪽으로 들어갈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물고기처럼요. 



안쪽으로 가지 못한 물고기는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죠. 사회역학자 리처드 위킨스는 "선행 인류시대의 서열 체제는 사회 지위에 극도로 관심을 보이는 예민한 성향을 후대에 물려줬다."고 말했죠. 그리고 심리학자 디카슨는 사회적 평가를 포함하는 과제가 일반 과제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약 3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지위가 낮다는 인식은 인간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대체 어떻게 자신의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를 알까요? 여기서 다시 흰자가 등장합니다. 


아무리 친구끼리라고 하더라고 미묘한 서열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동물학자 마이클 챈스는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실험은 세 명의 아이가 처음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3명 아이들의 지위가 매우 빠르게 확립되었다고 하죠. 그러는 동안 마이클은 아이들이 어디를 쳐다보는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결과를 발견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쳐다보는 빈도수에 의해 서열이 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쳐다보는 사람이 가장 지위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성을 갖추기 위해 인간은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제일 많이 쳐다보는가. 즉 여기서 제일 지위 높은 사람이 누군가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죠. 동시에 나의 지위는 어느 정도인가? 즉 나는 얼마만큼 시선을 받고 있는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시선을 명확히 해주는 흰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스타들이 왜 그렇게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또한 SNS의 거대한 성공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SNS는 흰자를 가진 인간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공략했습니다. 인간은 지위를 항상 신경 쓰는 존재입니다. 흔히 "감성"사진이라고 불리는 인스타를 생각해 보세요.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 사진(또는 몸 사진)이 올라오고 그런 사진들은 "좋아요"를 받습니다. 즉 사람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유저들은 그렇게 자신이 무리의 안쪽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인스타는 요즘 사람들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는지 확인시켜줍니다. 어쩌면 인스타는 인간의 제2의 흰자가 아닐까요?



인간은 낮은 지위를 인식하면 고통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SNS 부작용도 최근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는 현재 대학을 휴학하고 빚을 갚는 중입니다. 옛날부터 집안이 어려웠었던 그 친구는 용돈을 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특히 인스타에서 명품을 사거나 여행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굉장히 큰 박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심지어 아픈 부모님까지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 박탈감에 빛을 내어서 1년간 제대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말았다는 게 그 친구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사태를 오로지 그 친구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고만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무리 바깥에 있음을 목격하면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쪽에서 헤엄치는 크고 아름다운 그들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도 흰자를 가진 인간이니까요.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


저는 가끔 거울을 보며 제 눈을 관찰하고는 합니다. 눈으로 눈을 본다는 이상한 상황을 즐기면서 말이죠. 제 눈에도 역시 흰자가 있군요. 저는 흰자가 상징하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남의 눈치를 봄", "무리 지어 다니는 존재", "관심을 받아야지만 안심하는 존재", "질투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존재", "내 위치를 걱정하는 존재". 저는 절망합니다. 나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별수 없구나. 결국 한 마리의 호랑이는 되지 못하는구나. 결국 나도 무리 지어 다니는 얼룩말에 불과하구나. 모욕감에 휩싸입니다. 저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굴욕적인 목소리. "관심받고 싶어!", "잘 보이고 싶어!"


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째서 실눈캐들이 강한지. 어째서 오딘이 지혜를 얻기 위해 한쪽 눈을 포기했어야 했는지. 남의 눈치를 반만 보더라도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흰자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은 얼마나 비극적인가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두 눈을 뽑아버린 오이디푸스의 심정을 알 것만 같습니다.


사람의 눈을 보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무리의 안쪽에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인스타에 들어가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고 싶다고, 얼굴 한번 보자고 연락해 주세요. 그 사람이 이야기할 때 그를 집중해서 쳐다봐 주세요. 그 사람이 혼자 있고 싶어 한다고요? 그러나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사람의 말이니까 믿어주세요. 그리고 부디 저처럼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길, 혹시라고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당장 거울에 가서 눈에 흰자가 있는지 확인하시길.


이왕 진화하는 거 이렇게 진화했었으면 개간진데




"사람들이 나를 보도록 만드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고 내가 말하더라도 화내지 마십시오"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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