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머리가 아파서 1교시 수업을 빠졌다. 갈까 말까 한 열 번 정도 고민했지만 결국 1교시만 빠지고 2, 3교시는 출석하는 걸로 스스로 타협했다. 마침 어제 아내와 학교 출결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터였다. 아내는 초등학교 6년 간 개근해서 개근상을 매년 받았다는 거다. 몸이 아팠을 때도 있었지만 엄마(장모님)가 학교를 보낸 뒤에 심하면 조퇴를 하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나도 한 두해 정도는 개근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친구들이 학년 말 조회시간에 개근상을 받을 때 난 뒤에서 지켜보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학교를 많이 째는 불량(?) 학생이다.
중학교 시절 출석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날따라 너무 피곤했는지 아침에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가 놓고는 그대로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서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다니. 얼굴이 화장실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심지어 이 집 바닥은 타일도 아니고 돌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집에 울려 퍼졌다. 그 충격과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이미 앞니가 날아간 뒤였다. 피가 많이 났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엄청 아팠던 기억이 뚜렷하다. 넘어지는 소리가 워낙 컸고 내가 흐느꼈기 때문에 주무시던 아빠가 금방 달려오셨다. 아들이 아침부터 갑자기 화장실 바닥에 앉아 피를 흘리며 울고 있으니 많이 놀라실 수 밖에. 내 상태를 확인하고 괜찮냐고 물으셨던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인생의 명장면은 바로 다음 장면이다.
"학교는 가야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난 부모 세대의 믿음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아픈데 학교를 가야 하지? 병원부터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학교 들렀다가 조퇴해서 결석을 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학교 하루 안 가면 인생이 뭐 어떻게 되나? 왜 어른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 반항심이 생겼다. 재밌게도 이때 딱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 시스템과 그것이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심어온 수많은 가정들에 대한 내 불신은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2006-2008년만 하더라도 '야자'라고 불리는 야간 자율학습이 대다수 학교에서 의무였다. 아니나 다를까 또 반항심이 올라왔다. "학교가 뭔데 나한테 밤 10시까지 공부하라 말라 난리지? 무슨 권리로 이런 학과 외 추가 학습을 의무화하는 거지?" 그래도 1학년 1학기에는 뭘 잘 몰랐기 때문에 짜증은 났지만 그냥 야자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야자가 재밌기는 했다. 강원도 시골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중앙에 기름난로가 있어서 옛날 도시락을 데워먹을 수 있는 게 좋았다(우리 고등학교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장마철에는 천장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곤 했다. 물론 그래도 공부는 계속 이어졌다). 가끔 친구들과 야자 땡땡이를 치고 닭갈비를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뒤에 받았던 체벌은 재미 없었지만. 1학년 2학기에 들어가면서는 이제 야자를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별로 공부 효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조금 휴식하고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께 야자 중단 통보를 했더니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엄마에겐 이미 내가 왜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인지를 설명하고 설득해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쉽게 모시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1학기 성적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 야자를 예외적으로 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 반에서 난 유일하게 야자를 안 하는 학생이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성적이 좋다거나 선생님이 좋아하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예외를 들어주는 교육 방식도 정말 잘못됐다. 그 대상이 나라고 하더라도 단지 공부를 잘한다고 학생을 편애하는 선생님들을 나는 조금도 존경할 수 없었다.
요즘은 고등학교 야자도 많이 사라지고 초등학교 개근상도 없어진 걸로 안다. 야자가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 개근상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를 여기서 따질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땐 왜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땐 왜 그렇게 출석에 목을 매었고, 왜 두발 단속을 그렇게까지 했으며,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왜 그렇게 폭력을 행사했고, 왜 아픈데도 학교를 가야 했던 걸까? 우리는 좀 더 일찍 그런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질문 던지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일들이 몇 년 뒤에 돌아보면 "아 그땐 왜 그랬지? 안 그래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질문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이래서 중요한 게 아닐까. 너무 늦게 질문하면 이미 다 지난 다음이다. 지금 질문하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른다. 왜 지금 나는 여기서 이런 선택들을 하며 이런 가치관을 중요시 여기며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다른 사림이 던진 질문에 대한 그 사람의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어떻게 학생들의 성실 근면성을 장려할 수 있을까? 아!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은 학생들을 뽑아서 개근상을 주면 되겠다.
문제는 '결석을 안 하는 행위는 곧 성실함과 근면함을 대변할 수 있으며, 이런 속성은 장려되어야 마땅한 것이다'라는 이 가정이 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생각은 이와 많이 다르다. 내가 직접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타인의 가정과 결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없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가정과 결론을 의심은 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대신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을 사회는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으니 욕먹을 각오는 필수다.
우리 딸아이도 7년 뒤쯤엔 학교에 들어갈 텐데,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 분명 있을 거다. 아프지 않아도 말이다. 학교에 갈지 말지 결정은 아이에게 맡기자고 아내와 합의했다. 대신 책임과 뒤처리도 자기가 몫이겠지만.
오늘 학교에 안 가고 싶은 이유가 뭐야? 오늘 학교에 안 가면 오늘 놓친 학교 진도는 어떻게 따라갈 생각이야? 요즘 친구들과 관계는 문제없어? 오늘 학교 안 가고 뭐 하고 보낼 계획이야?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뭐라고 말씀드리면 좋겠어? 내일은 학교에 가고 싶을 것 같아? 아빠가 도와줄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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