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보다 화장실 휴지

마스크 꼭 써야 할까

by 최혁재

한국은 매일 마스크 대란인데, 이곳 미국에서는 휴지 대란이다. 어제 Costco에 갔더니 다른 게 아니라 화장실 휴지가 동나 있었다. 생수 같은 물건들은 많이 남아있었는데 말이다. 마스크는 애초에 팔지도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좀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걸까. 왜 이렇게 휴지에 집착하는 걸까. 화장실 롤 휴지가 매진되자 하는 수 없이 키친타월을 집어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장실을 얼마나 가려고 그러지. 미스터리다.


우리 동네 길거리에서 아직 마스크 쓴 사람을 보지 못했다. 구글링을 좀 해보니 서양에서는 마스크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한국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여태껏 마스크는 나를 다른 감염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쓰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미국 사람들에게 마스크는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더 옮기지 않기 위해 쓰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국에 밖에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오히려 코로나 환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실제 뉴욕 등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마스크를 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범죄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는 딴 세상 얘기였다. 아무도 미국에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온 뉴스가 코로나 기사로 도배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시국을 선언하는 상황까지 왔다. 휴지와 손세정제도 전국적으로 매진되고 말이다. 기사를 보다가 마스크를 꼭 써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길래 흥미롭게 읽었다. 혹시 반대 의견은 어떤가 싶어 더 검색해봤고, 한국 전문가 의견은 어떤지도 조금 읽어봤다. 아래는 Ars Technica의 기사에서 마스크에 효용성을 설명한 부분을 직접 요약, 번역한 것이다:


아프지 않다면 굳이 마스크를 구매하지 마세요. 이미 마스크를 가지고 있더라도, 병증이 없으면 착용하기를 권하지 않습니다.

안면 마스크는 지금 세계적으로 공급이 부족합니다. 가격도 급등했습니다. 이는 의료업종 종사자들이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환자 진료를 지속하고, 추가 감염을 예방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마스크 공급을 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런 비극은 이번 전염병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국제보건기구 WHO는 3월 3일 탄원에서 산업과 정부에 마스크 생산을 늘리고 적절치 않은 구매 행위를 저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WHO 사무총장 Tedros 박사는 “의료진을 먼저 보호하지 않고선 우리는 COVID-19를 막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은 의료진만 위험에 빠뜨릴 뿐 아니라 당신의 건강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안면 마스크는 완전히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더라도 눈은 여전히 노출돼 있고, 오염된 손으로 만진다면 바이러스가 눈으로 침투할 수 있습니다. 수술용 마스크는 헐렁하기 때문에 빈 틈을 통해 입으로 감염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호흡기를 통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디자인된 N95 마스크를 쓰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적절히 착용하는 게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알맞게 착용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착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 오히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많이 만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이러스가 손을 통해 안면으로 번질 위험성을 높입니다. 게다가 이미 오염된 마스크 외부 표면을 손으로 만질 경우 이후 추가적인 감염 위험도 높이게 됩니다. 이런 요소들은 마스크를 사용하는 목적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의료 전문가들은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잘못된 안전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필요한 예방조치들에 소흘 해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반인 중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유일한 경우는 환자를 보살피고 있거나 본인이 이미 아프고 COVID-19 발병이 의심될 때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마스크는 의료진에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합니다.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의 마스크 권고안은 위와 사뭇 다르다:



WHO나 미국 CDC 등 해외 전문가 권고와는 달리 대한의사협회는 COVID-19 증상이 있는 환자가 아니더라도 마스크 사용이 감염 확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염호기 위원장은 “비록 외국에서는 건강한 일반인에게 마스크가 불필요하다는 지침이 있지만 국내의 상황을 고려해 지침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외국과 다른 ‘국내의 상황’이 뭔지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집단 감염 사례가 유독 많은 한국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 같다.


결국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 마스크는 의료진에게 필수적이다.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현 사태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 의료진이 아니더라도 환자이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증상이 있거나, 감염자를 가까이 두고 있는 경우 마스크 착용이 권고된다.

- 일반인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감염 예방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

- 의료진과 취약층에게 마스크가 충분히 공급되고 나서도 남는다면, 일반인도 굳이 마스크 착용을 피할 이유는 없다.

-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했다면, 정확한 사용지침대로 바르게 착용해야 한다.


결론과 별개로 한국의 마스크 대란은 미국의 화장실 휴지 대란보다는 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공포에 의한 너무 과한 반응은 이런 시국에 도움이 될 게 없겠지만, 그래도 미국 사람들의 화장지 사재기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마스크보다 화장실 휴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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