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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r 19. 2020

내 단점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읽고

내 단점들은 서서히 보완되어나갔지만 그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었다.


미국 에어비엔비의 엔지니어인 저자 유호현 씨의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국에서 내가 영어를 가르쳤던 어떤 기업 CEO 분이 선물해준 덕분에 읽게 됐다. 이 책은 실리콘벨리의 대표적 혁신기업 중 하나인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는 저자가 자기의 경혐과 고민을 통해 깨달은 '위계조직'과 '역할조직'에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위계조직은 일반적은 한국의 기업들처럼 직급이 직원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는 형태의 조직을 가리키고, 역할조직은 에어비엔비 같은 미국의 젊은 테크 기업들처럼 역할(role)이 직급에 앞서는 조직을 지칭한다.


위 문구에서 저자가 단점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는 건 역할조직은 직원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전문성에 의해 평가받기 때문에 단점에 집중할 필요 없이 강점을 활용해 성과를 내면 된다는 말이다. 반면 위계조직은 개별 직원을 전문가로 보기보다는 '일 잘하는' 또는 '일 못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보기 때문에, 강점보다 단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역할조직에서는 직원 하나하나가 자기가 맡은 전문분야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지만, 위계조직에서는 전문성과 상관없이 위계, 즉 직급에 따라 결정권이 주어진다.


인재 채용에 대한 자세에서 보이는 차이도 흥미로운데, 역할조직은 모두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아야 하지만, 위계조직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일 시키기 어렵고 조직 내 위계를 해치기 때문에 고만고만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들어올 사람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신규 입사할 수가 없다... 위계조직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일을 시키기가 어려워지지만, 역할조직에서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뽑으면 그의 역할까지 동료들이 대신해주어야 하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시각도 새로웠다. 저자는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교육하고 평가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바뀌려면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계조직이 역할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위계조직은 전문가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를 원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키면 뭐든 잘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 그렇지만 '너무' 똑똑해서 위계질서를 흐릴 정도는 아닌 사람을 채용하려 한다. 이게 획일화된 대졸 공채다. 반면 전문가를 원하는 역할조직이 한국에 많아지면, 대학들도 이런 수요 변화에 발맞춰 좀 더 차별화된 강점을 가진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획일화된 공채시험은 마치 개인기가 좋은 순서로 축구선수를 선발하여 성적순으로 잘하면 스트라이커, 못하면 골키퍼로 배치하는 것과 같다.


저자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일 테지만, 읽다 보면 위 글귀처럼 축구 관련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역할조직을 축구팀에, 그리고 직원을 프로축구선수로 비유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실리콘벨리에서는 아무 때나 해고될 수 있고, 그래서 해고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실리콘벨리에서는 커리어를 위해 일한다. 회사는 내 커리어의 여정에 있는 '현재 소속 팀'일뿐이다.


모두가 공격(영업/마케팅), 키패스(연구/개발), 수비(관리), 볼배급(재무), 골키핑(회계) 등에 전문가이기 때문에 현재 소속된 팀(회사)에서 최선의 기량을 보이면 더 좋은 팀으로 이적(이직)한다는 점에서 역할조직의 직원은 확실히 프로축구선수와 닮아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대학 교수가 기업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쓴 논문이 아니라, 실리콘벨리 현장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직접 보고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의견이다. 그래서 대부분 주장의 근거는 개인의 경험이다. 객관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도 나름 매력이 있다.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고, 비슷한 경험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면 공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이 쓴 책들처럼 지루하지도 않고 쉽게 읽힌다. 가만 생각해봐도 '실리콘벨리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라거나 '한국에는 왜 실리콘벨리가 없을까' 같은 뜬구름 잡는 다큐나 책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 실리콘벨리의 대표적 혁신적 기업인 에어비엔비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의 경험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후루룩 읽어볼 만한 책이다.



커버 이미지: 실리콘벨리 에어비엔비 본사/ 출처: Dimensional Innov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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