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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un 21. 2020

처음으로 달러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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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이 나왔다. 난생처음으로 미국 달러를 벌었다. 감격스럽다. 고등학생 때부터 언젠가 미국에 살면서 크게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될 거라는 몽상을 자주 했다. 내 사업도 없고 부자도 아직 못 됐지만 미국에 살겠다는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 1년 동안 버지니아에서 미국 MBA 유학을 하면서 한국에서 벌어온 돈 중에 약 1억 원을 썼다. 국가 차원으로 보자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외화가 그만큼 유출된 것이다. 그나마 7만 달러가 넘는 1년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충당해서 다행이었지, 이것마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나와 아내가 수년간 열심히 벌어온 우리 전 재산은 이미 연기가 돼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1년 동안 통장 잔고가 내리막만 달리다가 오래간만에 살짝 올라가니 마음이 좀 놓인다. 딸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다 돼서 아빠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집에 돈을 벌어온 것이다.


리나야, 아빠 돈 벌어왔어!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를 포함해 대부분 미국 기업들은 2주마다 임금을 지급한다. 한국에 비해 두 배 속도로 월급이 들어오니 기다리는 지침이 확실히 덜한 편이다. 이 와중에 한국처럼 월 1회 임금을 지급하는 회사가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일을 하는 방식이나 업무량뿐 아니라 월급 지급 방식도 왠지 모르지만 한국 기업과 비슷하다. 지난 에서 미국 주요 기업들은 인력이 많아서 야근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아마존은 여기서도 예외다. 사람이 많지만 일은 더더욱 많아서 야근도 꽤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지금 아마존에서 인턴 중인 친구들도 밀려드는 업무량에 숨이 가빠 보인다. 그래도 아마존 답게 돈은 정말 많이 준다. 많이 일하고 많이 벌고 싶으면 MBA 졸업 후 선택하기 좋은 직장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좀 덜 받고 여유롭게 일하고 싶다

내 월급도 인턴 치고 적은 편은 아니다. 한 달 기준으로 약 9천 달러를 받는데, 미국 주요 MBA 학생들이 받는 평균 인턴 월급이 8천 불 정도니까 괜찮은 수준이다. 사실 오피스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걸 감안하면 구매력 기준으로는 평균보다 낮을지도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는 주 세금이 클 뿐만 아니라 주거비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역시 돈을 많이 주는 데엔 항상 이유가 있다). 어제 2주급이 통장에 찍힌 걸 보고 기분이 좋다가 말았는데, 세금이 어이없게 많이 떼였기 때문이다. 딱 30%가 세금으로 날아갔다. 복지도 하찮은 이 나라는 무슨 세금을 이렇게나 많이 떼 가는 걸까. 세전으로 연봉 1억 원 찍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미국은 지역마다 물가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회사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타 지역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이 꽤 많다. 지난주에는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몇몇과 대화를 나눴다. 들어보니 포틀랜드에 사는 선택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방 2개가 딸린 집 월세가 4천 달러라면, 포틀랜드에선 2천5백 달러다. 매월 2백 만원씩 아끼고 들어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거주 지역에 따라 회사가 임금을 조정하긴 한다. 그래도 월세가 비싼 동네는 뭐든 다 비싸기 때문에 좀 조정된 낮은 임금으로 더 싼 지역에 사는 게 확실히 더 여유 있어 보인다. 작은 도시를 좋아하고 여유를 즐기는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실리콘밸리 회사를 다니며 어느 도시에 살지는 내가 유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니,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MBA 졸업 후에 지금 회사로 돌아오게 된다면 샌프란 말고 포틀랜드 같은 좀 더 아담한 도시에 사는 옵션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다. 역시 일단 시작은 샌프란에서 해보고 싶지만.




여담이지만 실상 괜찮은 직장의 전부가 서울에 집중된 한국도 원격근무가 꼭 활성화되길 희망한다. 내가 자란 강원도 춘천이나,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아이 키우며 살면 참 좋을 텐데. 수도권에 살아야만 일하고 먹고 즐기고 배우고 살 수 있는 구조 하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같은 정책이 무슨 실효성이 있을까. IT 강국이라는 자존심은 왜 이런 데 못 써먹는 걸까. 원격근무 그거 해보니까 정말 별거 아니던데. 필요한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과 합리적인 시스템, 그리고 연습인데... 코로나로 점점 더 가속되고 있는 '공간으로부터의 자유'가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한 얘기라는 게 좀 아쉽다. 늦어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겠지만.



커버 이미지: Photo by Giorgio Trovat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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