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미국 회사 생활에서 가장 강조되는 요소 중 하나가 '네트워킹'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다른 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기 존재, 역할, 능력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렇게 맺은 네트워크는 조직 내외에서 새로운 기회에 노출될 확률을 높여준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정치'와는 좀 다르다. 그것보단 더 수평적으로 내 저변을 넓혀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향인이고, 이런 기질 때문에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고, 굳이 사람들을 붙들고 '나 이런 이런 능력이 있으니까 기억해줘' 하는 식으로 광고를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돌아다니며 PR하지 않아도 내 능력 그 자체로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비현실적인 바람이 있어서다. 뭐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내 기질 타령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나름 네트워킹에 에너지를 쓰고는 있다. 재택근무하면서 이마저도 안 하면 투명인간이 돼 사라져 버릴까 봐.
이번 주에도 최소 하루 1-2명의 사람들과 커피 챗(20-30분 정도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는 약속 - 업무의 연장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무도 '논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을 잡았다. 물론 Zoom에서 하는 화상 만남이다. '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인턴이고, 네가 담당하는 업무분야에 관심 있으니까 나랑 커피 한 잔 해줘', 이런 이메일을 여럿 써 보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많은 한국 사람들은 대체 다 어디에 있을까?
내가 일하고 있는 오토데스크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는 중국인이 정말 많다. 새어보진 않았지만 파이낸스 본부 직원 약 1천여 명 중에 대략 10%는 중국계인 것으로 내 맘대로 추정한다. 내 매니저도 상해에서 건너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MBA를 받고 미국에 정착한 토종 중국인이다(이 사람 덕분에 인터뷰를 통과하고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해볼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반면 한국인은 몇 명이나 있을까? 1명. 나 혼자다. 싱가포르와 서울 오피스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은 있지만, 미국 본사 소속 한국인은 나 밖에 없다. 궁금하다. 그 많은 한국 사람들 다 어디 있는지. 구글에 물어보니 미국에 거주 중인 중국인과 한국인의 수는 각각 380만 명, 170만 명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이 숫자들이 유학생, 영주권자, 1-3세 이민자 등을 모두 포괄하는 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국에 사는 한국인 수는 중국인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MBA 유학생 수를 한 번 보자. 내가 재학 중인 UVA Darden에는 중국인이 대략 24명, 그리고 한국인이 6명 다니고 있다. 4대 1 비율이다. 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한국 학생이 적은 편이라, 한국인이 선호하는 다른 top MBA 스쿨에는 3:1 정도이지 않을까 대강 찍어본다. 어림잡아 보더라도 MBA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직장 내 중국인과 한국인 비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와 내 MBA 한국인 동기들이 일하고 있는 오토데스크,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어딜 봐도 중국인 수가 월등히 많다. 그리고 더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중국인 동기들이 리크루팅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회사든 중국인 직원들이 꽤 있고, 또 연락하고 도움을 청하면 매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료애가 강한 것 같다. 물론 한국인들도 반갑게 맞아주고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적인 수에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 많은 한국인 학부, 석박사, MBA 졸업생들은 다 어디 갔을까?
답은 모르겠고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1) 한국이 살기 좋아서 돌아가는 비율이 높다?
한국 유학생 수의 몇 십배에 달하는 인도 유학생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본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본국 사정이 여러 가지로 열악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미국에 남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학하고 돌아가더라도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도 MBA 졸업생 입장에서 돌아가는 게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여건인 게 사실이다. 목숨 걸고 미국에 남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미국이 한국보다 월등히 선호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도 좋으니 돌아가는 비율이 높고, 그래서 여기 남아있는 한국인이 별로 없는 건 아닐까?
2) 언어장벽(영어)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 한 번 인도와 중국과 비교하면, 영어는 확실히 한국인에게 높은 장벽이다. 인도인에게는 전혀 장벽이 아니고, 중국인들에겐 조금 낮은 장벽이다. 언어 때문에 조직 내에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내가 굳이 여기서 고생하면서 뭐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많이 미국을 떠나 귀향하는 걸까?
3) 원래 돌아갈 생각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많다?
MBA만 보더라도 한국인 중 유독 스폰서십 비율이 높다. 대기업에서 비용을 대주고 잠시 연수를 보내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미국에 남아있는 한국인이 적은 걸까.
4) 한국인들은 미국 일부 지역, 일부 직종에 집중 분포돼 있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직장인보다 자영업자가 많다. 그다음으로 연구원이나 교수가 많다. 그냥 나나 내 동기들이 일하는 전형적인 미국 대기업을 한국인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대기업은 한국에도 많으니까? 흠.
이상 답을 알아도 별 득 될 것 없는 쓸데없는 내 질문에 대한 근거 없는 내 대답이다. 별로 사람 안 좋아하는 나지만, 그래도 외로운 타지에 살면서, 공유할 경험과 이야기가 많은 한국인들이 주변에 더 많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커버 이미지: Photo by Joshua Hoehn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