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혁재 Jul 19. 2020

MBA 1년이 가르쳐준 것들 - #1

성장은 자기부정이 아니라 자기인정에서 출발한다

오늘은 MBA 2학년 수강신청 마감일이다. 벌써 2학년 수강신청을 하고 있다니. 언제나 그렇지만 미국에서 보낸 지난 1년은 참 빨리 지나갔다. 꿈에 그리던 미국 MBA에 발을 들여놨고, 딸아이를 낳고, 미국 테크 회사에서 인턴쉽도 시작했다. 영어는 늘긴 했지만 역시나 원하는 만큼은 아니다. 언제쯤 스스로 만족스러울 만큼 영어가 될지는 미지수다.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할 내 딸아이가 내 영어실력 향상의 마지막 희망이다.


버지니아의 여름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1년 전 여기에 도착했을 때, 식당에 가도 마트에 가도 나와 내 아내만 동양인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했었다. 방학기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면서 동양인들이 더 자주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도 이방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다. 특히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교수님들은 대부분 정도 많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더 다양성이 높은 곳으로 학교를 갔다면 몸도 마음도 더 편하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 버지니아대학교 다든 MBA를 택한 것에 이제껏 후회는 한 번도 없었다.




MBA 1학년이 내게 가르쳐준  번째 레슨은 ‘ 대한 것이다. 내가 누군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를 배웠다. 평균적인 MBA 학생들은 성격적으로 나와 많이, 많이 멀다.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말이다. 훨씬 사교적이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이다. 나 같은 내향인이 어울릴 자리는 별로 없어 보였다. 날마다 파티가 이어지고 사교활동이 벌어져도 나는 거기 스며들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그런 걸 즐기지 않는(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걸 고쳐야 하는 하나의 문제로 접근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나중에 리더로서 성공하려면 이런  성격의 약점을 극복하고 변화해야 해’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몇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내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건 학교 테라피스트였다. 미국의 많은 회사들이나 학교들은 전담 테라피스트(상담사)를 고용해 상주시키는데, 어떤 고민이든 약속을 잡아 상담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의 우울증이나 사소한 성격적인 약점 같은 것들에 솔직하고 그것들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상담사를 많이 찾아 필요한 도움을 구한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미드에서나 보던 테라피스트 상담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한 번 받아본 상담은 그 후 2-3개월 간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내성적인  바꿔야 할 대상도 아니고  바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향인인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 대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스킬(기교)들을 익혀서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 방법밖에 없단다.  나를 바꾸는  아니라 나한테 필요한 무기를 찾아서 장착하는 것이다. 또는 보완적인 파트너를 옆에 두는 것도 좋다. 뭐든 배울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과 바꿀 수 없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이렇게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걸 배웠다. 성장은 자기부정이 아니라 자기인정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비즈니스 스쿨에 와서 처음 배운 게 이거라니.



커버 이미지: Photo by Debby Hudso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미리 쓰는 2020년 회고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