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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ul 28. 2020

MBA 1년이 가르쳐준 것들 - #2

사람은 많고 삶은 다양하다


한국에 살면서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주변에는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있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살아온 여정도 닮은 그런 사람들. 이런 동질감, 소속감은 서로에게 더 공감할 수 있고, 서로를 더 안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누구나 자기와 흡사한 무리 속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니까. 반대로 단점도 있다. 그중 하나는 단조로움이다. 싱그러움이 적다. 같은 생각을 하고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무리 속에서 자주 새로운 영감을 받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종종 내 사고가 확장되지 않고 정체돼 있다고 느꼈다. 더 발전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나는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갈구하게 됐다. 새로운 환경이란 결국 낯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나를 던져 넣는 것이다. 피부색도, 모국어도, 자라온 환경도, 삶의 가치관도 다른 완전한 타인들 속으로.


미국 MBA가 바로 딱 그 새로운 환경이다. 30년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그것도 한 번에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이질감은 나도 모르게 피로감으로 다가와 차곡차곡 쌓였다. 학교를 다녀오면 항상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수업 듣는 것 말고는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나와 매우 다른 낯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데 그만큼 에너지가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을 배웠다.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아서 항상 가드를 들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해 줄지, 내가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 항상 경계감을 유지해야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해지고 편해지면서 이런 경계감도 잦아든다. 문제는 이렇게 낯설고 이질적인 사람 집단 자체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미국이 괜히 salad bowl이 아니다). 어떤 한 부류의 사람들이 편해졌다고 끝이 아니란 말씀. 어딜 가나 새롭고 낯설다. 그래도 아직은 이런 낯섦이 좋다.


우리 반에는 65명의 동기들이 있는데, 정말 가지각색이다. 로렌(가명)이라는 친구는 아버지가 심한 알코올 중독자다. 평소에는 너무도 자상한 가장이자 환자들에게 친절한 의사다. 하지만 술만 먹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작년에는 술을 마시고 로렌의 엄마이자 자기의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같이 죽자고 협박했다고 한다. 술이 깬 뒤에는 자기가 어떤 끔찍한 일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고... 그런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수년간 몸소 겪어야만 했던 로렌의 마음은 어땠을까? 난 백분의 1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큰 일을 겪고 살아온 로렌은 정말 착하고 친절하고 열심히 사는 친구다. 현재 투자은행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다.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은 이런 뼈아픈 짐을 안고 살아온 로렌은 어떻게 저렇게 바른 성인이 되었을까? 한편 그 맘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고, 또 자주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까?


에이미(가명)라는 친구는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났다. 워낙 희귀병이라 의사들도 아기가 왜 아픈지 몰라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행히 원인은 찾아냈지만 치료가 가능하지는 않았다. 에이미는 여전히 글루텐을 먹지 못한다. 단순히 속이 거북하거나 배가 아픈 수준이 아니다. 혹시나 실수로 글루텐을 섭취하게 되면 응급실로 직행이다. 응급실에 재빨리 가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잘 피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였다면 불가능까지는 아니라도 훨씬 더 식이요법 준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이것 자체가 목숨을 건 도전이었지만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꿈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불과 1달이 채 안되어 에이미는 구급차와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그 당시 중국에서 글루텐을 완전히 배제한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에이미는 1달 만에 교환학생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본인의 희귀병이 얼마나 밉고 삶이 절망스러웠을까.


이런 가지각색의 인생 스토리들이 널려있다. 아빠의 가정폭력 때문에 엄마와 집을 나온 친구, 오늘도 우울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친구, 해외 선교를 위해 오지에 갔다가 사고로 죽을 뻔했던 친구, 마약에 손을 댔다가 인생 망칠 뻔 한 친구 등(물론 이런 암울한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내 인생은 너무 순탄했던 거 아닌가 싶다. 이들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을 입이 없다. 이런 다양한 영혼들과의 상호작용은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관심의 폭을 넓혀놨다. 인류애가 더 커졌다고 할까. 내 삶에 더 감사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난 좋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더라. 주변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항상 있더라. 다들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더라. 다르게 살아도 괜찮더라. 그리고 이런 삶의 스토리에서 배울 게 참 많더라. 이게 내가 MBA 첫 1년간 배운 두 번째 레슨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imitar Belch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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