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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an 01. 2020

미리 쓰는 2020년 회고록

1년 먼저 쓰는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다고 할 수 있는 2020년도 벌써 다 갔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태어나서 자라 준 우리 딸 리나에게 참 고마운 한 해였다. 1월 9일에 태어난 겨울아이 리나는 지난달 처음으로 혼자 일어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엄마', '아빠' 같은 두 음절의 간단한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되려 내가 아빠로서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아내도 힘든 육아를 잘 견뎌주고 있다. 견딘다기보다는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고맙다. 좋은 엄마가 될 줄은 알았지만 모든 면에서 놀랍도록 기대 이상이다. 새해 2021년도 리나를 중심으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길 기도한다.


아빠라는 역할을 떠나 한 사람으로서 내게 2020년은 탐색과 실험의 한 해였다. 2019년이 새롭게 미국으로 건너와 MBA 공부를 시작하며 성장통을 겪던 시기라면, 올해는 좀 더 성장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Amgen이라는 멋진 바이오 회사에서 여름 인턴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됐고, 이를 통해서 그토록 경험해보고 싶던 '미국 직장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시나 미국 직장생활도 별로면 바로 진로를 바꿔서 박사과정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이 좋은 건지 그냥 Amgen이 좋은 건지 일단 최소 몇 년은 즐겁게 회사생활할 수 있겠다고 믿게 됐다. 감사하게도 Amgen이 full-time offer를 줘서 7개월 뒤 MBA 졸업과 함께 그곳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토록 그리던 캘리포니아 생활이 기대된다.


또 다른 마일스톤은 글쓰기를 습관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2020년에 들어가면서 매일매일 글 한편을 쓰기로 마음먹었었다. 새해 목표라는 거 30년 살면서 제대로 이룬 적 없었는데, 처음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큼 다가갔다. 지난 한 해 '매일'은 아니지만 300개 이상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키보드 앞에 앉는 게 자연스럽다. 아직도 매일 아침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게 가끔은 괴롭기도 하지만 '창작에서 오는 고통'은 곧 기쁨으로 변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새해 5월에 MBA를 졸업하고 나면 Amgen에 입사하는 7월 말까지 3개월 정도 시간이 나는데, 이때 제주도에서 2-3달 살면서 지난 2년간 쌓인 글들을 정리해 책을 묶어낼 생각이다. 나도 33세에 드디어 '작가'가 되는 건가.


MBA 2학년이 되면서 MBA 공부 관련 공부 및 과제량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공부량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지난 학기부터 시작한 Capstone 프로젝트가 은근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다. Capstone은 한 스폰서 기업이 제시한 데이터를 토대로 실제 비즈니스 문제를 푸는 프로젝트 과정이며 졸업을 위해 필수다. 좀 애를 먹고 있긴 하지만 너무 운이 좋게도 재밌는 토픽을 배정받아 요즘 핫한 툴들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사실 졸업하고 이 기업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로 일하는 옵션도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아직은 Healthcare 기업인 Amgen에 훨씬 더 끌리는 게 사실이다. 어느 업계에서 post-MBA 커리어를 시작하든 데이터 사이언스 공부는 꾸준히 할 거다. 어디서든 써먹을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 믿게 됐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빵도 참 많이 굽고 많이 먹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버지니아 샬러츠빌은 매우 작은 컬리지 타운이어서 서울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빵들이 없다. '없으면 내가 만들어 먹지 뭐'하고 시작한 제빵은 이제 맛보다도 재미로 하는 멋진 취미가 됐다. 애초에 먹는 게 목적이었다 보니 진짜 생각나는 대로 만들었는데, 지난 1년 동안 만들어본 빵이 대략 이렇게나 많다: 꽈배기, 카스테라, 롤케익, 스콘, 마들렌, 그리씨니, 올리브 치아바타, 생크림 케익, 소시지빵, 술빵, 밤식빵, 고구마식빵, 우유식빵, 피칸파이, 포카치아, 바게트, 앙버터, 모카번, 치즈케익, 쿠키, 뺑 오 쇼콜라, 크루아상 등. 제빵이 특별한 취미인 이유는 바로 '제빵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만들면 무조건 망친다. 온도, 습도, 무게, 량, 시간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결과물이 틀어진다. 인내심과 정밀함이 필수다. 이런 점 때문에 개인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새해에도 계속 아내와 리나가 먹고 싶은 빵을 구울 생각이지만, 제빵 말고도 새로 나를 끌어당기는 취미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싶다. 1년에 하나씩 경험해 봐도 죽을 때까지 못해 본 일이 많아 아쉬울지 모르니까.


2021년 말에 나는 또 어떤 회고록을 쓰고 있을까? 새해가 또 기대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Federico Respi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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