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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Sep 03. 2020

바쁜 게 더 편하니까

루틴의 힘

요즘 우리말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지난 1년은 주로 킨들로 영어 책만 읽어왔기 때문에 킨들 내에서 구매할 수 없는 한글 책은 별로 못 읽었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내 우리말 어휘와 문법 수준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매일 느꼈다. 그래서 우리말 책을 더 많이 읽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예스24 북클럽(월 구독 서비스)에 가입해서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읽어봤지만, LED 스크린 가독성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해서 손이 선뜻 가지 않았다. 가독성이 떨어지니 집중시간도 짧아지고 독서 속도도 느려졌다(책 좀 읽겠다는데 이렇게 핑계도 많다). 킨들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말 전자책을 구글 Play 스토어에서 구매한 뒤 PC에서 손수 확장자를 변환해서 킨들로 읽기 시작했다. 귀찮기는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킨들로 우리말 책을 읽기 시작한 7월 말부터 약 한 달 동안 내가 읽은 책이 9권 정도였는데, 아이패드로 읽었다면 2-3권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가독성만의 문제는 아니고, 아이패드는 여러 방해 요소로 가득한 유혹 덩어리니까.


8월에 읽은 9권 중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바로 루틴의 힘이다. 온갖 유혹으로 가득한 스마트폰 같은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중요한 일들에 집중하고 원하는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모아 놓았다. 생산성이나 시간관리에 대한 책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가볍게 금방 읽히는 책이지만, 그 안에 나를 새로 일깨우는 지혜가 가득했다. 남는 게 많은 짧고 굵은 독서였다. 역시 책의 가치는 그 두께에 비례하지 않는다.


습관, 오토파일럿

“새로운 관점에서 나 스스로를 바라보니, 소중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쁜 습관으로 허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정작 나의 진정한 목표와 바람은 무시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모두가 ‘일’만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잠시 숨을 고르고 ‘방식’에 변화를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길다. 하지만 막상 자려고 침대에 누워 돌아보면 오늘은 뭐했나 싶다. 보람찬 날도 있지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후회가 남는 날이 더 많다. 자각하지 않으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가 나쁜 습관으로 허비되고, 정작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는 데 쓸 자원이 남지 않게 된다. 삶의 방식, 즉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항상 시작이 문제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에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단 새로운 습관에 익숙해지고 나면 별다른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고, 여기서 아낀 에너지를 더 많은 자제력이 필요한 다른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매일 하는 것이 1주일에 한 번 하는 것보다 쉽다. 매일 글 쓰는 게 주 1회 쓰는 것보다 쉽다. 주 1회 글쓰기로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습관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토파일럿'에 의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러면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큰 결심이 필요하고, 책상 앞에 않는 데만도 많은 에너지가 허비된다. 또, 매일 해야 까먹지 않는다. 생각보다 자주 우리는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망각 때문에 중요한 일들을 놓친다. '아 맞다 오늘 글쓰기로 했었는데...' 무언가를 매일 하면 기억할 필요도, 까먹을 일도 없다.


"저는 소설 쓰기 모드에 돌입했을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작업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 달리기나 1500미터 수영을 한 다음(혹은 두 가지를 모두 한 다음),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지요.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고요. 이런 루틴을 변화 없이 매일 지속합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합니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니까요. 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하지만 6개월~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런 반복적 생활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이 요구되지요. 이런 의미에서 장편 소설을 쓴다는 건 생존 훈련과도 같습니다. 예술적 감성만큼 체력이 절실한 일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이란다. 인간은 생각대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소설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저 습관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스스로 '역시 나는 열심히 글 쓰는 작가야!'라고 믿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반복은 이런 선순환을 낳는다는 의미에서 자기 최면이다.


"포르투갈 생명건강과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다 익숙한 루틴에 의지하게 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의사 결정 및 목표지향적 행동과 연관된 뇌 부위가 수축하고 습관 형성에 관련된 부위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더 루틴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흡연, 음주, 인스타그램 확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나쁜 습관이 많다면 스트레스와 나쁜 습관이 만드는 죄책감의 악성 피드백 안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 필요하다. 명상, 운동, 독서 같은 것을 말이다.


방해 요소, 멀티태스킹의 유혹

“유명 소설가 조너선 프랜즌은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소설 <자유>를 쓸 때 집기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무실에 스스로를 감감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자신의 구닥다리 노트북 컴퓨터에서 무선 랜 카드를 빼내고 초강력 접착제와 톱으로 이더넷 포트를 아예 못쓰게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귀마개와 소음 방지 헤드폰을 끼고 마치 누에고치가 된 것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글 쓰는 게 제일 쉬울 것 같은 성공한 소설가들도 매일 유혹과의 전쟁을 치른다.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유혹에 강한 철인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애초에 유혹을 차단하는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고, 루틴의 일환으로 이를 실천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저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중요한 일에 더욱 힘과 시간을 쏟고 싶다면 자기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항상 애써야 한다.


24시간 항상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우리에게 유혹을 차단하는 루틴을 가지는 것은 필수다.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교과서를 읽으면서 메신저를 사용하는 학생이 책만 집중해 읽는 학생에 비해 같은 분량을 읽는 데 25%나 더 오래 걸렸다고 한다. 메신저 이용 시간을 빼고 나서 말이다. 즉, 멀티태스킹을 하면 한 가지 일을 할 때보다 완성도는 떨어지고 걸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끝내고, 그러고 나서 마음 편하게 메신저를 하는 것이 성과와 만족도 모두를 올리는 비결이다.


“제아무리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작업 성과가 떨어진다. 유혹에 저항하려는 행위 자체가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정신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즉 딴짓을 무시하려고 애쓴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아예 이들을 집중 영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기가 세워 놓은 규칙을 어기지 않는 데 정신 에너지의 절반을 쏟아야만 한다.”

2011년 코펜하겐 대학교의 연구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집중력과 에너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아이패드로 책을 읽을 때 우리 머리는 손가락 제스처 몇 번이면 다른 수많은 자극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이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속에서는 이쪽으로 옮겨가고 싶은 충동과 싸우면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100% 읽기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다. 킨들로 책을 볼 때 독해력이 더 올라가는 것은 단순히 스크린 가독성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킨들은 모든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고, 오직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올라가 더 생산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해 보이는 변화지만, 미완성 상태인 아침 업무가 정신을 좀먹는 벌레처럼 뇌리에 남아 이후 업무 수행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주의력 잔여물 효과'라고 부른다... 가능하다면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찝찝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기꺼이 손을 놓을 수 있는 중단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식으로 심적인 마무리를 끝낸 후 다른 과제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편이 훨씬 쉬운 길이다.”

비슷한 경우로 한 가지 일을 끝내지 않은 상태로 다음 업무로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공감 가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자. 집중해서 어떤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점심을 먹자고 한다. 이 순간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간다. 아내가 밥을 해놓았으니 안 나갈 수는 없고,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걸 끊고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때 '주의력 잔여물'은 밥을 먹는 동안도 계속 나를 괴롭힌다.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것이다. 가능하다면 일의 어떤 지점까지 마무리를 짓고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무작위 보강'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쥐가 레버를 100번 누를 때마다 먹이를 준다고 칩시다. 쥐의 입장에서는 신나는 일이죠. 그러나 횟수를 1~100까지 무작위로 골라 선택하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아도 쥐는 계속해서 레버를 더 많이 누르는 겁니다."

무작위 간격으로 발생하는 재미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인스타그램, 유투브,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싶은 충동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핸들을 당기게 만드는 충동과 비슷한 것이다.


현실 회피, 의도적인 시간 낭비

"일종의 확신이 부족할 때 우리는 전자 기기를 들여다보곤 한다. 현재를 회피하게 만드는 불안감의 정체에 더욱 집중하라. 기존의 모습을 계속 염려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집어 든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다.


"자리 잡고 앉아서 그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이메일에 응대하는 게 실제로도 훨씬 편하니까요.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늘 시간이 없는 이유는 사실 시간이 없는 편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쓸데없이 인스타그램 스크롤을 넘기거나 관심도 없는 유투브 영상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나마 불안감을 잊는다. 적어도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어떤 중요한 일에 대한 의무감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나쁜 습관은, 긍정적이지만 힘이 드는 습관에 대한 회피에서 발생한다. 습관이 곧 우리 자체임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내가 가진 나쁜 습관의 수는 내가 도전에 응하지 않고 회피한 횟수와 비례한다.


"안식년을 가지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은 '시간'이란 공들여 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 낸 시간은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문제에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 누군가 금요일에 만나자고 하더라도 '금요일은 안 됩니다. 목요일에 뵙죠'라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자원은 없다. 우리는 돈은 아깝게 생각하면서 생각보다 시간은 쉽게 허비해 버린다. 남한테 돈 빌려달라고 말하긴 어려워하면서,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습관을 통해 남의 소중한 시간을 갈취한다. 내 시간도 소중하고 남의 시간도 소중하다.



Photo by mauro  mo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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