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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Oct 03. 2020

여수 밤바다, 그게 어디든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2012년 그리스 이드라섬에서 아이폰4로 찍은 추억의 사진


다녀본 여행지 중에 내게 가장 큰 행복감을 선사한 곳은 그리스다. 그리스 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산토리니는 못 가봤지만, 아테네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나가면 닿는 이드라(Hydra)라는 섬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한국 여행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이드라 섬의 모든 건물 지붕에는 붉은 기와가 얹어져 있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 하늘색 지중해 바다.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은 내 기억에 몇 없다. 그 정도니까 스물다섯 살 풋내기 주제에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다. 30대인 지금은 조금 더 현실적(이라 쓰고 낭만이 줄었다고 읽음)이라서, 병원과 여러 편의시설이 부족한 그런 섬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언젠가 지중해의 아름다음을 충분히 내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건재한 나이에 그리스 섬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한 번 사는 인생, 나는 기필코 그리스 섬에서 살아볼 것이다. 단 한 달이라도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다. 대게 이런 식이다.

"여행으로 잠깐 들러야 좋지, 거기 살면 좋겠어?"

"그런 데 가서 살 돈 있으면 한국에 사는 게 더 좋아. 돈 많으면 한국이 최고야."

"가면 이방인이고 친구도 없는데 외로워서 못 살걸. 한국인은 한국에 살아야 돼."


이런 반응들에 나쁜 의도가 담겨있는 건 전혀 아니다. 내 소망을 짓밟으려고 이런 말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자기 일 아니니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의 꿈이나 소망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게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일 때 더욱 그렇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은 위험하다거나 해봐도 별로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게 편하다. 내가 살고 있는 대로, 그대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관성은 가속하는 기차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스스로 계속 상기하지 않으면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관성으로 살아간다. 


뭐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이왕이면 지인의 꿈에 응원 한 마디를 던져줘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어차피 별 관심 없는 거 다 안다. 이왕 내 일 아닌 거, 어차피 빈말인 거,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응원해주는 습관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리스? 와 나도 여행 가봤는데 진짜 예쁘더라. 한국이 편해서 살기 좋긴 하지만, 인생 한 번인데 나도 한 번 그런 데 살아보면 좋겠다. 너 꼭 거기 가서 살아라. 나 놀러 가게!"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내 생각과 말을 고치면 인생도 조금씩 고쳐지더라.




내가 그리는 이런 삶을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정운 작가다. 그는 서울 생활을 접고 여수로 가서 여수 바닷가에 살면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최근에는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한 시간이나 바다로 나가야 하는 조그만 섬에 개인 화실을 지어놓고 여수와 그곳을 오가며 산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저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에서 그는 이 여정을 자세히 풀어놓는다. 어떻게 서울 교수 생활에서 일본 미술 유학을 거쳐 여수 앞바다 섬까지 가서 살게 됐는지,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인지, 왜 현대인들에게 화가의 화실 같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지, 그 특유의 위트 있는 말솜씨로 들려준다. 50대 아재인 그와 직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나지만, 그래도 참 흥미롭게 읽었다.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모두가 따라 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용기 있게 먼저 보며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 '리더'다. 남들보다 먼저 보는 리더의 새로운 시선이 '공유'될 때 사회는 발전하고 구성원들은 성장한다.


먼저 보고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삶. 이게 내가 글 쓰는 이유와 보람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을 구독자들도 '함께 봐주길'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본다고 똑같이 볼 필요는 없다. 같은 걸 보면서도 전혀 다른 걸 볼 수도 있다. 그게 더 좋은 일이다. 같은 걸 보고 비슷한 생각만 한다면 굳이 같이 볼 필요가 없지 않을까? 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함께 보기'를 요청하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


자주 웃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맞고 틀린 건 없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행복'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내 행복을 추구하고 살면 그만이다.


'상식 common sense'은 라틴어의 '공통 감각 sensus communis'에서 파생한 단어다. 특정 감각만이 절대화되면 '상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소통 불가능해진다.


보이는 것들(아파트, 자동차, 얼굴, 몸매 등)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상식'은 더 이상 상식적이지 않게 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려면 더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들이 인정받아야 한다. 내 정답을 남에게 강조해서도 안 되고, 내 인생을 결정하는 데 다른 사람 눈치를 지나치게 봐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도 이제 다양성에 더 주목할 때가 됐다. 상식을 지키는 선에서 개인이 원하는 삶을 마음껏 살아갈 때가 됐다.


밑줄을 긋고 빈 곳에 내 생각을 문자화하는 행위는 매우 성찰적이다. '내가 왜 이 구절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메타 인지'라고 한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자기 성찰'의 메커니즘과 '밑줄 긋는 독서'의 메커니즘이 심리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나도 '생각'이란 걸 할 때가 독서할 때 밖에 없더라. 스마트폰을 소유하기 전에는 매일 자주 멍을 때리곤 했었는데 이젠 '멍 때리기'도 옛말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유투브를 본다. 유투브는 재밌지만, '내가 왜 이런 영상을 재밌다고 생각하지?'와 같은 메타 인지를 유발하지 않는다. 속도와 자극, 도파민 분비가 우위를 점한다. '독서 만능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독서는 중요하다. 생각할 시간이 없는 사람일수록 책을 읽어야 한다. 집중해서 책을 보려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그리스 연안이든 여수 앞바다든 내가 원해서 스스로 선택한 곳에 살고 싶다. 그렇게 살려고 난 계속 발버둥 칠 것이다. 서울에 태어나서 서울에 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하니까' 서울에 사는 삶은 수동적이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행운이다. 이런 행운을 외면하지 않고, 나는 최대한 누릴 생각이다. 그리스 섬에서 꼭 살아볼 것이다. 어디가 더 좋은지는 살아보고 말하겠다. 누가 들어주기나 한다면.



커버 이미지: Photo by Hello  Lightbulb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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