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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May 23. 2021

불편한 책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불편한 책 한 권을 또 읽었다. 제목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부제가 '페미니즘 에세이'라고 지어진 홍승은 작가의 책이다.


작가를 알았다든가 페미니즘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다든가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예스24 북클럽에 올라와 있는 책 목록을 보다가 제목이 눈길을 끌어 내 보관함에 담았다. 예전에도 눈 앞을 지나쳐간 적이 있는 제목이라 이번에는 한 번 펼쳐보고 싶었다. 펼치는 순간에도 완독하게 될 줄은 몰랐던 책이다.


내용은 불편하고 생소했다. 같은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래서 완전히 소화할 수 없어 불편했다. 이런 직설적인 주장을, 그것도 생생하게 묘사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어 생소했다. 남자인 나는 겪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사건들과 견해가 새로웠다. 독자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는 분명 달성됐다.


작가의 문장력이 좋아 책은 술술 잘 읽혔다. 그런데 문장의 길이와 리듬, 포함하는 어휘들이 맘에 들었던 것에 비해 책을 다 읽은 뒤에 남은 밑줄은 몇 개 안 되었다. 이건 아마 저자가 소수의 문장들에 힘을 주어 쓰기보다는 책 전체를 일관되게 공들여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전제된 사회에서 모호하고 불확실한 대답은 '오답'이 된다. 현실은 뚜렷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고 복잡다단하지만, 보물찾기처럼 정답을 찾으려는 문화는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밑줄 친 몇 안 되는 문장 중 하나다. 책 전체에서 이 문장에 가장 공감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잘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기보다는 혐오한다고. 불확실성은 혐오의 대상이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받아들일 수 없으니 거부한다. 거부하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이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은 요긴하다. 악으로 규정하면 내 거부가 정당화되고 자연히 나는 선이 되기 때문에. 저자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이분법이 만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이로 인한 피해를 많이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공감 가는 부분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모호함을 일체 해결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목적의 책이 아니었던 이유다. 오히려 나는 아직도 페미니즘이 정확히 뭔지, 페미니스트들의 공통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일부러 피했다. 애초에 '이것이다' 또는 '저것이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그랬을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서로가 이해하는 공유된 정의 없이 생산적인 논의를 하는 건 어렵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고 내려갔다.


모든 남자, 모든 여자가 같지 않듯이 페미니스트도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 그렇게 정의 내리려는 노력은 또 다른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렇다', '저렇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확신과 믿음을 의심하기를 작가는 권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떠나 세상은 불확실성이 원래 기본임을 상기한다. 내 밖에 존재하는 세상은 본래 복잡하다. 나 자신도 잘 모르는데 내 바깥세상에 대해 어떤 일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확실성을 경계한다. 어떤 이의 강한 확신 뒤에는 혐오, 기만, 분노 같은 것들이 숨어있을 공산이 크다고 믿는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렇다면 불확실함에 대한 확신은 설 자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즉 '답이 없다는 확신'이 '답이 있다는 믿음'을 악으로 정의하고 역으로 공격할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 따라서 불가지론은 항상 승리해야 하는 걸까?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페미니스트가 쓴 에세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은 책이다. 이쪽도 저쪽도 자기 확신을 항상 경계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그런 메세지를 던져준 에세이 한 권으로 내겐 읽혔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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