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MBA 유학

by 최혁재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여름 인턴쉽이 끝나고 곧장 비행기를 탔다. MBA 가을 학기는 바로 시작됐고, 나는 원룸에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며 홀로 외롭게 수업을 들어야 했다. 격리가 끝난 지금은 춘천 부모님 집에 지내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미국 MBA 수업을 강원도 춘천, 그중에서도 깡시골인 신북읍 산속에서 듣고 있다니 참 별일이다. 내 미국 유학이 갑자기 춘천 유학이 되다니. 그것도 등록금이 국내 그 어느 대학 어느 학과보다 비싼 유학이.


온라인 수업이라고 몰아서 주말에 듣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매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Zoom으로 접속해 케이스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도 미국 시간을 살고 있다. 오후 4시에 자서 밤 12시에 일어난다. 부모님, 아내, 딸아이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다른 시간을 살다 보니 겹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내 수업이 끝나는 아침 7시쯤 다들 깨어난다.


지금 글 쓰며 바라보는 시골 풍경


소중한 MBA 2학년을 미국도 아닌 한국 집구석에서 보내야 하는 게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딸아이와 놀아줄 수 있고, 퇴근이 늦기는 해도 부모님이 있어 육아를 도와주신다. 부모님 집에 있으니 따로 국내에서 주거비로 나갈 것도 없고 시골이라 마음에 여유도 넘친다. 공기는 서늘하고 하늘과 산은 높다. 밥은 당연한 얘기지만 심지어 커피도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맛있다(미국 사람들은 혀가 좀 둔감한 것 같다).


비록 시부모님 집이지만 아내도 편하게 지내고 있어 다행이다. 오히려 미국 돌아가지 말고 여기 살자고 한다. 그러면 나는 춘천 사는 건 좋은데 한국에서 내가 밥벌이할 일거리가 별로 없어 안 된다고 대답한다. 글쎄, 춘천에서 내가 영어 강사라도 하면 가장 노릇 할 수 있으려나. 미국 회사에서 잘리면 여기 와서 살지 뭐.


글 쓰고 책 읽기 좋은 발코니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긴 했지만, 아직 세금이나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회사에 근무할 수는 없다. 지금 내 경우처럼 한국 지사로 인사이동을 해서 근무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 한국 임금 수준에 맞춰 월급도 떨어진다. 한국 생활비가 미국 대비 그렇게 크게 싼 것도 아닌데 봉급 떨어지는 정도는 꽤 크다. 같은 일을 해도 한국에서 하면 보상이 적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1년여 만에 한국에 돌아와 춘천을 와보니 카페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여기도 카페 저기도 카페다. 시골답지 않게 모던한 카페들도 있고, 반대로 시골다워서 예쁜 카페들도 많다(구독자 분들께는 저희 부모님 집 옆에 있는 ‘옆집 카페’​ 추천합니다. 밭 view가 아주 아름답고 강아지 놀이터도 마련돼 있습니다. 심지어 커피 등 음료도 맛있네요). 손님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오는 것 같다. 문득 나도 춘천 와서 카페 운영하고, 영어 가르치고, 글 쓰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행복할 것 같긴 한데 나이 32살에 아직은 좀 이른 듯싶다. 결국에는 아내와 이곳으로 회귀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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