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시간가치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보다 낫다

by 최혁재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보다 낫다.



'시간가치'는 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면 오늘 행복한 것이 내일 행복할 거라는 불확실한 기대보다 낫다. 같은 단위의 행복이 오늘 아니면 10년 뒤, 이렇게 두 시점에 주어지는 선택지가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오늘 행복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적어도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달리 말해 오늘 10 만큼의 행복을 희생한다면, 그 대가로 내가 미래에 누릴 수 있어야 할 행복의 크기는 10 보다 커야 한다. 그것도 많이.


‘돈의 시간가치’는 금융의 핵심 개념이다. 한 마디로 오늘의 돈이 내일의 돈보다 낫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 소비와 투자다. 한우를 먹어도 오늘 먹는 게 한 달 뒤에 먹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낫다. ‘기대’라고 적은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미래에 내가 어떤 소비를 하겠다는 계획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하다.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고, 금융위기가 발생해서 한우를 못 먹고 수입산 냉동육을 먹어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늘의 소비는 미래의 소비보다 가치가 높다. '확실함'에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것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두 번째, 투자의 경우 이자라는 더 분명한 요소가 있다. 오늘 가지고 있는 돈은 1년 뒤에 내게 이자를 벌어다 주지만, 같은 돈을 1년 뒤에 갖게 되면 이자는 포기하는 셈이다. 요즘 은행이자가 0%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자’는 꼭 은행에서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식 투자는 부동산 투자든, 투자에서 나오는 수익은 자본을 빌려준 것에 대한 이자다. 아무튼 오늘의 돈이 내일의 돈보다 낫다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 당연한 개념이 행복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돈과는 다르게 오늘의 행복이나 미래의 행복이나 같은 가치를 지닐까? 아니면 미래의 행복이 오늘의 행복보다 나을까?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나는 행복도 돈과 마찬가지의 ‘시간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선, 인생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제 아무리 억만장자라고 해도 단 하루도 거꾸로 갈 수 없다. 앞으로만 달리는 기차에서, 도시락을 까먹느라 깜빡 못 보고 놓친 창밖 풍광은 다시 볼 수 없다. 무한대의 희소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0대 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고, 20대도 마찬가지다. 10대의 행복을 참아서 70대 때 같은 단위의 행복을 얻는다고 그 둘이 같다고 볼 수는 있을까? 우리가 오직 한쪽으로만 흘러간다는 자연법칙은 행복의 시간가치를 가늠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오늘 행복한 것이 내일 행복한 것보다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쓴다. 아껴서 부자 된 사람은 부자 된 뒤에도 그 습관 어디 가지 않는다. 행복을 누리는 우리의 자세도 그렇다. 지금 행복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 오늘 열심히 살아서 내일 행복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주어져도 그걸 충분히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행복도 습관이고, 습관은 반복적인 연습의 산물이다. 심지어 잘 사용하지 않는 감각은 점점 퇴화한다. 미래에 행복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오늘 행복함으로써 행복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무딘 감각은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인간 행동과 심리에 대해 탐구한 영국의 사회과학자 데니얼 네틀Daniel Nettle에 따르면 미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좌표는 바로 ‘오늘 행복한 정도’였다고 한다. 오늘을 놀 줄 아는 사람이 내일도 놀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몇 년 뒤에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서(좋은 대학에 간다거나 돈을 왕창 벌어서), 그때 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It is absolutely true about the genetic factors, and in fact the best predictor of, for example, how happy you'll be in 20 years' time is simply how happy you are now, which is a sobering thought because we all believe that we're going to have some incredible transformation in the next couple of years that will change everything."

Daniel Nettle
NPR 팟캐스트 <Talk of the Nation>, 에피소드 'Is Happiness All in Your Head?'에서


'행복의 시간가치'를 부정하는 우리 사회

우리는 어려서부터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 따위는 얼마든지, 매일매일, 최대한, 당연히 희생하라고 배워왔다. 그 선봉에는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있었다. 오늘만 참으면 내일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짓 위로를 그들은 매일 들려주었다. 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확실한 것은 이런 세계관이 ‘행복의 시간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의 행복이 오늘의 행복보다 낫거나 아니면 적어도 동등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신들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젊을 때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 갈걸' 하는 자기 후회에서 나오는 진심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3년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해. 대학 가서 열심히 놀아.”


말뿐만이 아니다. ‘강제 야간 자율학습’, ‘관리형 독서실’, ‘기숙학원’ 같은 무기(?)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답답하다. 저런 식으로 10대의 아름다운 행복을 강탈당한 아이들은 지금 대학교에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저런 것들이 아이들을 되레 불행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저런 희생들도 진정 오늘 더 행복해졌을까?'라고 묻는다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아니라고. 과거와 지금의 행복을 합한 총량으로 따졌을 때 우리의 희생은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내가 수험생일 때 이렇게 행복의 시간가치를 생각하며 공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난 내 10대 행복을 거의 희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저렇게 말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컸던 것 같다. 오늘 참으면 내일 행복할 거라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다시 태어나서 다시 공부해도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를 했다. 더 열심히 할 여지는 아주 많지만 그럴 생각도 없고, '이번 생에 너무 열심히 해서 다시는 절대로 그렇게 공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딱 적당히, 내가 오늘 행복할 수 있는 지지선을 내어주지 않는 범위에서 힘껏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은 오늘의 행복을, 내일은 내일의 행복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절대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지 않아도 되는 범위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게 아닐까. 오늘은 오늘의 행복을, 내일은 내일의 행복을, 그저 실시간으로 부채 없이 누리는 것.


10년 뒤 더 큰 집에 살기 위해 오늘 내가, 아내, 딸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나는 조금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hoto by Jakob Owe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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