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열정을 쫒아라?

by 최혁재

열정 + 열심 = 성공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 일에 매진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이제 설득력 하나 없는 옛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격언도 마찬가지다. 즐긴다는 행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것으로 생각되는 이긴다는 결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어떤 행위와 결과가 같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행위가 그 결과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긴 사람들에 한정해 관찰해 봤을 때 그들의 인생이 멋지게 보이고, 이런 멋진 삶을 그들이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즐기는 사람이 성공하기보단 성공한 사람이 인생을 즐기는 게 더 쉽지 않나. 즐기다가 KO패 당해 나가떨어진 사람들은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독서 나이'가 더 들수록 이런 회의주의적인 시각에 오히려 끌리게 된다.


내가 자기 계발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2005년 정도부터다. 중학생이었던 그때나 15년이 지난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자기 계발서 대부분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다. 꿈, 열정, 사랑, 비전... 그게 무엇이든 아무튼 이런 걸 열심히, 아주 열심히 쫒으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은 대게 경제적 이익을 뜻한다. 조금 달라진 것은 요즘 책들은 돈에 대한 우리의 탐욕을 더 솔직하게 들어낸다는 점이다. 이제 '꿈', '열정'이라는 말로 굳이 포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돈을 좇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멋져 보이기도 한다. 공식의 우변이 수정됐다.


열정 + 열심 = 돈


저런 책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입시공부를 할 때도 그랬고, 대학에 가서 진로 문제로 방황할 때도 그랬다. 어쨌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그 공식이 삶을 단순화해 주었다. 하나의 공식으로 삶이 단순해지자 고민은 적어졌다. '열정', 즉 좋아하는 일에 내 열심만 보태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 또 없다. 불확실했던 인생이 명료해졌다.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말이다. 애초에 자기 계발서들은 이런 식으로 불확실한 인생을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시켜 독자들에게 안정감을 선물하는 상품이 아닌가 싶다. 정말 자기 계발이나 성공의 단서를 선물하는 상품은 애초에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저런 공식을 믿고 열정을 찾아 헤맸던 20대 나의 심리는 이랬다. "자, 열심을 쏟을 준비는 다 돼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열정을 쏟을 만한 일 하나만 눈 앞에 나타나 주면 돼. 나오기만 해 봐라. 내가 한 번 제대로 보여줄게." 눈 앞에 펼쳐진 999개의 퍼즐 조각들을 버려두고 없어진 퍼즐 한 조각을 찾겠다고 돌아다닌 것과 비슷하다. 999개 조각을 먼저 맞추고 찾아도 될 일이다. 아니, 오히려 999개의 퍼즐을 맞추고 나면 없어진 한 조각의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해주진 않았다. 그렇게 마치 나에게 없는 단 하나의 조각만 찾으면 성공이란 그림이 완성될 것 같은 꿈속에 살았었다. 내 20대는 그랬다.


30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퍼즐 한 조각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달리 남은 방법이 없었다. 일단 눈 앞에 있는 999개 퍼즐이라도 맞춰보기로 하는 수밖에 말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뭘 정말 좋아하고 어떤 일을 즐기는지 잘 모른다. 싫어하는 건 분명한 편이지만, 가면 안 되는 길을 안다는 사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진 않으므로 그다지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20대 때처럼 초조한 마음은 없다. 999개의 퍼즐을 지금부터 맞춰 나가려면 초조해하고 있을 여유도 없을뿐더러, 퍼즐을 다 맞출 때까지 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때까진 꼭 마지막 한 조각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잠깐, 애초에 내가 가진 퍼즐이 999조각짜리는 아닐까? 애초에 난 잃어버린 것도 찾을 것도 없이 다 내 손에 들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이러나저러나 방법은 하나. 999개 조각을 먼저 맞춰보는 것이다. 내 30대 대부분은 여기에 할애할 생각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Hans-Peter Gaus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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