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

첫 베트남 여행의 기억

by 최혁재

"위잉위잉위잉."

붉은 노을과 까만 바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풍경을 등지고 식당으로 걷는 길,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1'로 시작하는 번호, 분명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콩닥콩닥콩닥.'

잠시 심장이 멎는 듯하더니, 이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르기도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발신자가 누군지, 용건이 뭔지, 지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건지, 전부 다.


회사를 그만둬서 3개월째 수입도 없는 주제에 이곳 동남아 휴양지까지 놀러 온 이유도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미국 유학을 위한 지원서류 접수를 마치고 났더니 결과를 기다리느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백수라서 딱히 손에 잡을 일도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고, 가성비로 베트남보다 나은 곳은 없어 보였다. 바닷가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으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도 있었다.


"축하합니다. 버지니아대학교 다든 비즈니스 스쿨 2019학년도 수시전형에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아, 정말요? 그렇군요……. 너무 감사드립니다만, 달리 무슨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요……."

"괜찮아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 말씀하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 중에 이메일로도 합격 통지를 받으실 겁니다. 아직 장학금 위원회에서 장학금 수여 여부나 액수 등을 논의 중에 있어서, 관련 정보는 며칠 더 기다려야 전달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결정이 나는 대로 안내 이메일이 발송될 겁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몇 개월 뒤 미국에서 뵐게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럼."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정표현이었다. 감정을 드러내 놓고 표현하는 일에 미숙한 내게, 어릴 적부터 꿈꾸던 미국 MBA에 합격했다는 뉴스는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너무 좋아서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고나 할까. 머릿속이 하얘져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말도 없이, 아내와 식당을 향해 다시 걸었다.


베트남 호찌민 남쪽에 위치한 뿌꾸옥섬, 솔비치 리조트 1층에 위치한 메인 레스토랑 바깥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가끔씩 모기가 한 두 마리 달라붙었던 점만 빼면 노천에서 저녁식사를 하기에 그보다 최적의 환경은 없었다. 해가 잠든 베트남의 가을 공기는 선선했고, 불과 50미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소리는 아름다웠다. 여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는 베트남 요리라니. 혹시 꿈이더라도 이렇게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꿈은 아니었다.


나는 반숙 달걀프라이가 올라간 동남아식 볶음밥을, 아내는 흰밥과 함께 나오는 모닝글로리 요리를 먹었다. 물론 시원한 맥주도 함께. 이날 저녁엔 정말이지 모든 게 완벽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를 위해 준비된 날처럼 느껴졌다. 불과 6개월 앞서 다녀온, 비용으로 치자면 10배나 더 비쌌던 몰디브 신혼여행보다도 더 황홀했다고 말하면 아내가 콧방귀를 뀌려나. 2018년 10월 베트남 여행의 기억은 그렇게 천국의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난관은 어떤 식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지를 생각해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한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일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쓸까 하는 고민이 제일 컸죠.


부족한 어휘력으로 최대한 현실감 있게 묘사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 서툴러서 판에 박힌 듯한 시시한 표현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그 표현들을 최대한 재끼고 다르게 써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 위에 써놓은 이 글이 지금 제 수준에서는 최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배울 게 많네요.


배경과 대화의 직접 묘사를 통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을 독자들에게 그럭저럭 잘 전달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과연 이 글을 읽어야 할 이유를 주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럽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글이란 읽는 이에게 최소한 재미는 선사해야 하니까요.


감동이나 위로, 동기부여, 깨달음 같은 것들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재미가 없이 독자에게 진정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요. 가닿기 전에 독자가 흥미를 잃고 글을 내려놓는다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글은 일단 흥미로워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이 점이 내일의 숙제로 남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글을 쓰는 날까지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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