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일까? - 3

OECD 평균 의사 수와 2.3명의 의미

by 최혁재

공공 의대 설립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의사들 사이 공방이 치열하다. 보건복지부는 OECD 자료를 근거로 한국의 의사수가 OECD 37개 회원국 평균에 비해 너무 적다며 OECD 평균 수준에 맞게 늘려야 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다. 매일 같이 뉴스에서 보도하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이제 우리나라 의사수가 인구 1천 명 당 2.3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2.3명이라는 숫자는 2019년 11월 7일 발행된 OECD의 <Health at a Glance 2019> 자료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팩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팩트는 주장하지 않는다. 주장은 사람이 한다. 그리고 주장은 판단에 근거한다. 2.3이라는 숫자가 어떤 주관적으로 이상적인 기준에 비해 적정하다, 많다, 부족하다는 판단 말이다. OECD 평균이라는 숫자는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스스로 주장하지 않으므로, OECD 평균에 맞추자는 주장에는 이미 OECD 평균이 지향점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는 OECD 평균에 비해 적으냐 많으냐가 아니라 왜 OECD 평균 수준에 맞춰야 하는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뉴스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나저나 해당 OECD 보고서를 직접 찾아본 사람이 국내에 몇이나 될까? 뉴스도 믿을 수 없고 사람도 믿을 수 없어서 원본 자료를 찾아보는 습관이 내게 형성되는 중이다. 누군가 통계치 하나를 들고 나와 집착적으로 강조하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그 통계가 실제 근거가 있는 팩트라고 해도, 그 숫자를 골라서 어떤 주장을 펼치는 것은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데이터가 늘어나는 만큼 점점 세상은 살기 피곤해진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숫자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계로 거짓말하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지 않나. 우리 시간은 한정돼 있다. 크게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가벼이 지나간다. 그게 아니라면 '카더라'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원본 자료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덜 속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찾아봤다. 2.3명이라는 그 수가 보고된 바로 그 OECD 자료. 한번 살펴보자.


Chapter 8 - Health Workforce [8장 - 의료 인력]

- Doctors (overall number) [의사 수, 전체]


뉴스에서 이미 지겹게 들은 것처럼, 2017년 기준 대한민국 의사수는 인구 1천 명 당 2.3명이 맞다. 2000년에는 1.3명 정도였으니 17년 동안 92%가량 증가한 것이다. 연율로는 약 4%다. 주의할 점은 의사수가 매해 4% 늘었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에 비해 '플러스알파'로 4% 포인트 더 빠르게 증가했다는 말이다. 결국 OECD 평균 대비 국내 의사가 적다는 정부의 말도 맞고, 이미 의사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사들의 말도 맞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OECD 평균이 정말 그저 좋은 것인지, 평균보다 높은 나라들이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살기 좋은 상황인지, 의료시스템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결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인구 구성의 차이에 따라 의사 밀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이런 논의가 중요하다.


- Doctors (by age, sex and category) [나이, 성별에 따른 의사 구성]


이왕 자료를 펼쳐본 김에 다른 차트들도 가볍게 훑어보자. 한국의 의사의 연령은 OECD 평균 대비 매우 낮다. 55세 이상 고령 의사의 비중이 19% 밖에 안된다.

이 차트는 의외였는데, 2017년 기준으로 한국 의사 중 여성 비중이 겨우 23%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2000년에 비해 분명히 증가하긴 했을 텐데 자료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OECD 회원국 전체를 봐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든 국가에서 여성 의사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 Nurses [간호사 수]


한국의 인구 1천 명 당 간호사 수는 6.9명으로 OECD 평균(8.8명)에 비해 적다. 2017년 기준이다. 한편 2000년 대비 증가폭은 매우 컸다. (practicing: 근무 중인) 간호사 수가 두배가 훌쩍 넘게 늘어난 것이다.



2017년 국내 의사 1명 당 간호사의 수는 2.9명이다. OECD 평균에 매우 가깝다. 여기에 좋다 또는 나쁘다는 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다.


- Medical graduates [의대 졸업자 수]

2017년 한 해 기준으로 국내 인구 10만 명 당 의대 졸업자수는 7.6명이었다. 2018년 기준 한국 인구증가율은 0.8%이다. 앞으로 인구가 늘지 않고 5천만 명으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정부의 바람처럼 한해 의사 정원을 400명 늘리면, 저 7.6이라는 숫자는 0.8(400/500) 명 늘어난 8.4명 수준으로 오를 것이다. 여전히 OECD 평균(13.1명)에 한참 멀다. 이유야 어찌 됐던 정말로 정부가 OECD 평균 수준으로 의사 수를 늘리고자 한다면 어차피 연간 400명으로 될 일은 아니다.


- Nursing graduates [간호대 졸업자 수]


간호대 졸업자 수는 얘기가 완전 다르다. 한국이 스위스 다음으로 2등이다. 엄청난 간호대 졸업생들이 매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소리다. 이 속도라면 한국의 인구 1천 명 당 간호사 수는 OECD 상위권으로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단 조건은 있다. 간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2-3년 만에 그만두지 않고 간호사로 계속 남는다는 조건. 현 근무환경에서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Chapter 9. Health Care Activities [9장 - 의료 활동]

- Consultations with doctors [진료]


대한민국 국민은 2017년 한 해 평균 16.6회 의사 진료를 받았다. 압도적인 1위다. 이게 의사들이 말하는 의료접근성이다. 좋고 나쁨을 말할 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왜 저렇게 압도적으로 높을까? 의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미친 듯이 환자를 보기 때문일까? 동네 의원이 많아서 사람들이 조금만 아파도 쉽게 병원을 찾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타 OECD 회원국 국민들에 비해 유독 많이 아프기 때문일까? 다른 질문도 많다. 병원을 많이 갈 수 있다는 건 무조건 좋을 일일까? 의료 수가는 적절한가? 인구가 더 고령화되면 얼마까지 더 올라갈까? 지속 가능한 것일까?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데 진료 건수는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진료당 진료시간은 적절한가? 이런 질문들 없이 "2.3명!", 또는 "16.6회!" 같은 외침은 무의미하다. 아니 오히려 해악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의사는 평균 7080번의 진료를 했다(추정). 근무일을 250일로 잡으면 하루 평균 28.32회다. OECD 평균의 세배를 훌쩍 넘는다. OECD 평균을 무조건 지향하는 정부라면, 저 수도 낮춰야 할 것이다. 방법은 1) 사람들이 병원에 덜 가게 하거나 2)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다. 병원에 덜 가게 만들려면 의료 수가를 높여야 한다. 의료비 높이겠다는 정치인이 표를 받을 리는 없다. 남는 방법은 2번뿐.




머리 아프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의 모래사장에서 맞고 틀린 정보를 골라내는 일은 고통스럽다. 게다가 틀린 정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맞는 정보로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세상에서 가짜 뉴스는 계속 더 성행한다. 자료의 진위나 주장의 타당성을 가릴 시간도,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른 의사결정은 점점 힘들어진다. 집단 간 의견차도 좁히기 어렵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커버 이미지: Photo by Utsav Srest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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