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일까?

by 최혁재

우리 가족은 나 빼고 모두 의사다. 아빠는 병리학과, 엄마는 심장내과, 형은 내과 전공의 4년 차 의사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고 지금 MBA까지 하고 있는 나는 우리 가족의 black sheep(조직이나 가족 내에서 안 좋은 쪽으로 튀는 사람)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 내 생각은 항상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모습과 달랐다. 최근에 아기를 낳게 되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오랜만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일까?'.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좋다'라고 평가하는 이유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 돈을 많이 번다

- 조직생활 스트레스가 적다

- 재밌다/보람차다

- 안정적이다

- 워라벨이 좋다

- 사회적 지위가 높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할 때 의사가 정말 좋은 직업인지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돈을 많이 번다?

평균 직장인 대비 많이 벌지만 의사 사이에서 편차가 워낙 커서 집단으로 묶어 말하긴 어렵다.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보통 의사는 수 억 원 정도를 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현실과 다르다. 우선 전공의부터 보자. 4년 차 전공의인 내 형의 연봉은 나나 내 아내가 직장을 다닐 때 받던 연봉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적은 편이다. 전공의(레지던트)를 '학생'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전공의도 의사이고 그 힘든 의대 과정을 마치고 인턴 1년까지 마친 사람들이다. 그리고 4년 차 전공의라는 건 지난 3-4년 동안 엄청난 수의 다양한 환자를 대하고 치료해온 전문가라고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작 대기업 사원-대리 수준의 월급을 주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교수는 어떨까.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면 보통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택하는 것 같다. '스탭'(교수라 불림)이 돼 대학병원에 남거나 '페이닥터'가 돼 월급쟁이 의사가 되는 거다. 대학병원에 남게 되면 서울과 지방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억대 연봉은 아직 찍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페이닥터'가 되면 바로 억대 연봉에 진입한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계신 우리 부모님 연봉으로 봤을 때, 연봉 상승 속도는 매우 더딘 편이다. 30년 경력의 우리 부모님 연봉도 2억에서 한참 아래에 머물고 있고 당연히 은퇴하실 때까지 2억을 받으실 일은 없을 거다. 물론 부모님이 지방에 계셔서 서울보다 연봉이 많이 낮은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의사가 서울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엄청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은 틀리다고 할 순 없지만 과장된 부분이 많다.


안정적이다?

세상에 안정적인 직업이 더 이상 뭐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정년이 길고, 엄청나진 않아도 안정된 수익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 맞는 말이다. 개인병원을 하다가 망하는 의사도 많고, 전공마다 환자수도 천차만별이고, 각자 사정은 많겠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의사란 직업은 매우 안정적인 편에 속한다.


워라벨이 좋다?

의사 하면 배우자와 자녀만 좋다는 말이 있듯이, 의사란 직업을 논하면서 워라벨을 함께 거론하긴 어렵다고 본다. 특히 한국처럼 의료비가 낮은 구조 아래서 의사들이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는 힘들다. 많이 일해야 많이 버는 구조다. 의대에서 공부하는 시간과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인턴 및 레지던트 시절도 고려해야 한다. 가장 좋은 10-20대 시절을 공부만 하거나 환자만 보면서 대부분 흘려보낸다. 내 엄마도 지난 30년 동안 매일 15시간씩 일해 오셨다. 정말 30년 동안 '매일'이다. 워라벨을 원한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조직생활 스트레스가 적다?

병원도 사람들이 일하는 조직이고, 조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디든 있다. 물론 '교수' 또는 '원장'이라고 불리는 생활이 바닥에서 시작하는 일반 직장 생활보다 조금 나을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환자들이 주는 스트레스를 빼먹으면 안 된다. 매일매일을 아픈 사람들을 대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감정 노동이다. 나는 코감기 때문에 잠깐 병원에 가도 그 분위기가 싫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으로 아침마다 출근하는 생활을 난 즐겁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밖에 욕이나 폭력, 협박 등을 행사하는 환자들도 꽤 많기 때문에 의사가 스트레스가 적은 직업이라고 볼 근거는 약해 보인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

이건 그냥 맞는 말이다. 반박 불가.



결론은 개인의 몫이다. 내 생각에는 아픈 사람을 매일 보는 게 괜찮고, 10년 넘게 높은 강도로 공부하고 트레이닝받을 의지가 있고(20대 포기), 워라벨을 별로 개의치 않고, 엄청나진 않더라도 억대 연봉을 받고 싶고, 70대까지 길게 일하고 싶다면, 그리고 교수님 또는 원장님 소리 듣고 살고 싶다면 의사는 좋은 직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사회적 대우가 좋은 한국에서라면 더욱더. 하지만 난 내 딸이 의사가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매일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보다는 행복한 사람들과 일하면 좋겠고, 10-20대를 공부만 하기보다는 다양하게 탐험하고 즐기면서 보냈으면 좋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말리고 싶지도 않지만.






커버 이미지: Photo by JC Gellid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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