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좌절하지는 않을 정도의 강도로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이다. 말하기는 쉽고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다치지 않을 정도로 계속 넘어지고, 일어나서 또 걷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넘어져도, 일어나서 또 넘어질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나는 그런 용기가 없는 편이다. 어릴 적 스키를 배워서 지금도 어느 정도 잘 탈 수는 있지만 고급 수준은 아니다. 별로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이제껏 거의 넘어지지 않았다. 넘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넘어지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스키를 배웠다. 나처럼 안 넘어지고 스키를 배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정도로 난 넘어질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스스로를 인정할 용기도 없어서 취향, 흥미, 이런 것들을 탓해온 것도 같다. 넘어지면 재미없고 안 넘어지면 재미있다고 믿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나를 재발견하게 된 건 내 딸 리나 때문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에게서 요즘 매일 나를 본다. 아니다. 나한테서 아이를 본다. 내가 아이를 보고 뒤늦게 깨달은 것이니 아이가 날 닮은 게 아니라 내가 아이를 닮은 것이다. 넘어질 용기가 충분히 없어서, 혼자 충분히 걸을 준비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빠에게 손을 내미는 리나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리나는 자기 능력이 충분히 갖춰져서 혼자 걸어도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드디어 혼자 걷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스키를 배웠듯이. 내가 그렇게 삶에 필요한 모든 걸 배워왔듯이.
아이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볼 때면 되려 마음이 편해진다. 타고나는 천성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나도, 그리고 너도,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구나. 넘어질 용기가 좀 부족한 것도 우리 잘못이 아니구나.'
내가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리나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인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자기를 잘 이해하고 가진 것을 갈고닦아 최대한 활용하기에도 인생은 짧다. 자기가 아닌 것이 되려고 하면 괴롭다(진짜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최선이 되려고 하는 것도 힘들지만, 괴롭지는 않다. 리나도 나도 때론 힘들겠지만, 괴롭지는 않게 살았으면 한다.
넘어질 용기가 조금 없어도 괜찮다. 약간 더뎌도 금방 걷게 될 것이고, 뛰게 될 것이다. 비록 남들보다 용기는 부족하지만, 우리는 더 신중하다. 세상에 용기가 필요한 만큼 신중함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살면서 넘어지면서 배워야 할 일도 많지만, 한 번 넘어지면 끝인 일들도 더러 있다. 우린 그런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리나가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게 손을 잡아줄 것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Jordan Christi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