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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Feb 16. 2021

너도 부모 돼 봐라

너도 부모 돼 봐라.


부모 자식 간 갈등 시에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에는 '너는 겪어보지 않아서 멋모른다. 너도 겪어보고 나면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내 말을 듣는 게 맞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정말 부모가 되고 나면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서른둘에 막상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이 더 잘 이해되긴커녕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때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일을 좀 줄이고 더 놀아주지 못했는지, 왜 1년이나 떨어져 살아야 했는지, 머리는 받아들이지만 마음은 이해를 거부한다.


당시 부모님이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이나 육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지금과 달랐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선택과 행동들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키워주신 은혜가 감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부모 자식 간도 결국 타인 대 타인이므로 완전한 이해란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너도 부모가 돼 보면 나를 이해할 것"이란 주장은 억지다. 우리는 부모와는 다른 부모가 된다. 그래야 한다.


아빠가 되고 얼마 뒤에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본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까 엄마 아빠랑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없더라고요. 어렸을 때 좀 더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요즘 드네요. 그래서 저는 너무 일만 열심히 하지 않고 최대한 리나랑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려고요.


내가 내심 바란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고, 먹고살기 바빠서 여유가 없었어. 미안하구나. 지금 손녀를 보니 너랑 형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나도 많이 아쉬워. 그러니 너는 리나랑 많이 놀아주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렴.


사과를 바랐다기 보단, 내 감정에 대한 인정과 공감을 바란 것이었다. 나도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느라 어쩔 수 없이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정죄하려는 게 아니라 아쉬운 마음을 공유하고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돌려준 대답은 정반대였다.

에이, 아니야. 네가 어려서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너 어렸을 때 무주 스키장도 많이 가고 여름에는 계곡도 놀러 가고 그랬어. 원래 기억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억에 없다고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별로 안 보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이게 전부였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 나름의 자동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 같았다. 여기다 "그럼 엄마 기억도 불완전 한 건 모르세요?" 따위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는 내 유년시절에 대한 공감을 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수록 가라앉아 있는 상처가 더 올라올 게 분명했다.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부모는 자식에게 사과(또는 공감)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정적 정당함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부모일수록 자식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 오은영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나도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도 언젠가 "이런저런 게 섭섭했었다"라고 내게 말할지 모른다. 나는 더 좋은 부모가 아니었음에 사과할 것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내 입장도 이해해 달라고, 그리고 너는 나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되어 달라고 말해 줄 것이다.


혹시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된다면, 꼭 나보다 나은 부모가 되어 줘.




커버 이미지: Photo by Marcos Paulo Prad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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