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딸아이 리나의 나이는 이제 9.5 개월이다. 가장 이쁠 때가 아닌가 싶다(아직 갈 길이 멀어서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머리가 많이 자라서 미모도 전성기인 데다 말귀도 곧잘 알아들어 매일 놀란다. "윙크!" 하고 시키면 두 눈을 찡긋거리고, "개구리 어딨어?" 하고 물어보면 부엌 벽면에 걸려있는 개구리 모양 온도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빠'나 '엄마' 발음도 이제 제법 또렷하고 손을 붙잡고 걷는 모습도 이제 제법 어린이 같아 매 순간 사랑스럽고 신비롭다.
이렇게 이쁘지만 육아는 여전히 힘들다. 리나는 여러모로 손이 덜 가는 아이지만 아무리 순한 아이 경우에도 육아는 고되다. 한 생명을 길러내는 게 이토록 힘들다는 걸 깨닫는 게 육아의 시작이다. 그래서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또 다른 리나(둘째)를 바라진 않고 있다. 둘째 고민 같은 건 접어두고 리나에게만 집중하기로 아내와 동의했다.
우리 능력의 한계선을 시험하면서 육아를 실험하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하나는 자신 있지만 둘은 자신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시작하려면 동기(want) 못지않게 능력(ability)도 잘 고려해야 한다. 비록 부모는 힘들지만 아이를 위해선 동생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논리는, 둘 다 책임을 다해 잘 키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저 낳아놓고 쫓기고 쫓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자신이 없다.
육아가 힘든 데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이와 함께 나도 같이 성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성장통을 동반한다. 분명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 하나도 버거운 불완전한 존재였다. 이게 몇 개월 만에 바뀔 리 없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어쨌든 나 이외에 다른 존재를 감당해야 한다는 상황은 바뀌었다. 더 버거워진 상황에 적응하고 생존하려면 나도 같이 성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내일도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를 감당해야 할 내일의 나를 위해서 매일 아이와 같이 커나가야 한다. 어쩌면 나는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3주 전쯤이었다. 물을 마시다가 사레들려서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뒤에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리나였다. 리나는 물을 마시지 않았고 사레도 걸리지 않았다. 그저 아빠가 기침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따라한 것이었다. 기침에 대한 선/악의 판단이나 그 행위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아이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부모인 나의 행동(말, 훈계, 명령 같은 것들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리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일수록 나를 보고 자라는 리나도 좋은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나의 단점들을 그대로 배워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큰 자책감이 들 것 같다. 이건 나의 단점을 내 부모님에게서 발견하는 그 당황스러움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내가 내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바르지 못한 습관들은 일면 부모님의 탓이지만,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습성들은 모두가 내 탓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말이다.
(거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들만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부모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완벽하지도 않고 심지어 많은 결점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직장 상사들도 대다수 누군가의 부모이고, 그들도 자식들에겐 좋은 것만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결국 나도 내 바람과는 다르게 완전히 성숙한 사람이 되지도, 리나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알려주지도 못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나는 뭘 잘하고 있고 뭘 잘못하고 있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습관을 없애고 어떤 습관을 새롭게 가져야 할까. 건강한 몸과 마음은 어떻게 만들고 관리해야 할까. 계속 육식을 많이 해도 좋을까.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독서와 글쓰기에 각각 시간 배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새로 배워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나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결과적으로 내 딸 리나도 더 좋은 인간으로 자라나게 할 밑거름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