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는 어떻게 자랄까?
이게 웬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랍스터나, 새우나, 킹크랩이나 다 비슷하게 자라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그게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우린 그저 다 자란 랍스터를 맛있게 냠냠 먹어주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괜스레 궁금해지니까 한 번 들어나보자.
랍스터는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다. 이 껍질은 랍스터의 '속살'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랍스터가 자라려면 딱딱한 껍질이라는 한계를 어떻게든 뚫어내야만 한다.
속살이 자라남에 따라서 껍질 속이 비좁아지면 랍스터는 '환복'을 준비한다. 우선 포식자들로부터 안전한 바위 아래로 이동해서 몸을 숨긴다. 그런 다음 헌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 껍질로 갈아입는다. 새 껍질을 파는 백화점 같은 게 있지는 않을 테니, 직접 가내수공업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수고롭고, 시간도 꽤나 걸리겠지.
랍스터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환복을 계속 거듭해야만 한다. 새로 만들어 입은 껍질도 금세 또 비좁아지기 때문이다.
껍질이 점점 좁아질 때 랍스터는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다. 살이 쪄서 바지 허리가 졸려오는 느낌과 비슷할까. 아무튼 이런 불편함(uncomfortable)의 압박은 오히려 랍스터가 환골탈태할(grow) 수 있는 자극(stimulus)이 되는 셈이다.
불편함이나 스트레스가 좋은 것이니 즐기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랍스터도 새로 껍질을 만들어 갈아입는 과정이 즐겁기는커녕 고되고 힘들 것이다. 포식자에게 발견될까 봐 두려울 것이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게 틀림없다. 즐길 수 없는 감정을 즐기는 건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 불편함, 스트레스, 불안, 두려움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어떤 신호(signal)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 신호는 우리가 지금 우리 한계를 벗어나 한 단계 성장해야 할 시점이라는 신호일 지 모른다. 오늘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헌 껍질을 벗어나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잠시 잠깐의 쾌락(맛있는 음식, TV 예능, 여행, 쇼핑, 술, 담배 등)에 의존하며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잠깐은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속살은 계속 차오를 것이고 고통은 매일 더해갈 것이다. 불편함이 전혀 없다면 1) 껍질이 충분히 크거나, 2) 더 이상 알맹이가 자라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지.
다음에 랍스터를 먹는 날이 오면 속살이 얼마나 잘 차올랐는지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먹게 될 녀석은 너무 살이 꽉 차지 않은 녀석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살이 꽉 찬 녀석은 쌓여오는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게으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스트레스 적은 녀석이 분명 더 맛있을 테니까.
랍스터 먹고 싶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David Todd McCart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