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했다. 당시 그는 서른 살이었다.
소설 작가가 되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소설이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소설가가 되려는 것과 같은 야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로서는 무엇이 어떻든 간에, 아무 생각 없이 소설이라는 것을 쓰고 싶었다.
다 써놓고 나니 작품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몰라서 한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해놓고 잊어버렸다. 물론 그는 얼마 뒤 신인상을 타게 된다.
그는 카페 사장이었다.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재즈바 형태로 술을 팔았다. 사업이 그럭저럭 잘 되기도 했고, 당장 전업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등단 이후 3년 동안이나 가게 경영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이후 카페 사업을 접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더 좋은 작품을 이제는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잘 굴러가고 있는 가게를 매각하고 전업 작가가 됐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되는 인물이 30대에 '어쩌다가' 소설 작가가 됐다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역시 '단편적인' 영화와는 다르게 인생은 '연속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포터를 쓴 J. K. 롤링이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해리포터 줄거리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앞뒤로 어떤 수많은 연습, 선택, 생각, 실패가 있었을지에 우리 관심은 덜 쏠린다. 우린 언제나 극적인 한 순간, 계기, 도약, 반전에 현혹된다.
신화는 급진적이지만 현실은 점진적이다. 신화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취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걸어온 현실은 우리의 점진적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
맡은 일(카페 경영)에 충실한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일(소설 쓰기)에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꼭 당장 양자택일(카페 사장 vs. 소설가)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남의 평가보다는 자기만족(그저 소설이 쓰고 싶었다)이 중요하다.
결국은 더욱 잘하고 싶은 하나(소설 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냥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내 나이 서른 하나. 극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도록 매일 연습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