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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Nov 11. 2020

아름다운 사람은...

나는 정리 강박이 있다. 청소보다는 정리를 좋아한다. 청소는 쓸고 닦는 것이지만 정리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다. 먼지가 쌓인 냉장고 위를 보는 것보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양말 한 짝을 발견하는 편이 내 마음을 더 어지럽힌다.


어떻게 하면 더 정리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싶어 책을 펴 들었다. 이지영 씨의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란 책이다. 전반적인 전달력이나 구성 등이 기대에 미치진 못한 책이었지만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괜찮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은 그 정도면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저자는 집만 들여다봐도 거주자의 성향을 꽤나 잘 파악할 수 있는 집 정리 고수다.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이나, 사용성보다는 관습적으로 배치된 가구들은 매일매일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내린 결정들의 결과물이다. 그들의 습관을 보여주고 사고방식도 드러낸다. 가정주부들이 냉장고 공개를 꺼리는 이유다. 자기란 사람이 훤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이렇듯 사람은 공간을 결정한다. 반대로 공간도 사람을 결정할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다만 사람 자체의 성향을 바꾼다기보다는 생활양식이나 만족감을 변화시킨다. 삶의 질이 올라가고 긍정적인 감정이 많이 생겨 행복감을 높인다. 이는 곧 일상의 여러 방면에서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간접적이지만 확실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이란 공간을 의도적으로 잘 구성하는 게 이래서 중요하다.


요즘은 공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도 많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사고할 때 우리의 창의성이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대단한 박사 연구원들이 그럴듯한 실험을 통해 내린 유의미한 연구 결과라 믿는다. 아무튼 이렇게 공간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학계의 관심을 ‘공간적 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우리 관심이 ‘시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공간의 역할이 예전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잘 정리된 공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알 그 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여자화장실에도 붙어있는지 모르겠다. 구글링을 해보니 이 문구의 기원은 다름 아닌 공자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가 공자의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란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본래 뜻은 ‘혼자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다’ 정도로 해석된다. 공중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사람이 자기 집이라고 깨끗하게 쓸 리 없기 때문에 일리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책에서 시작해 화장실까지 와버렸다. 내 정신상태가 잘 정리돼 있지 않아서 그렇다. 이런 내 어수선한 머릿속은 지금 내 책상 위에도 그대로 재현돼 있다. 핑계를 대자면 요즘 밤에 개가 짖어서 잠을 잘 못 자서 그렇다. 책상 위도 마음도 최적의 상태가 아니다. 글은 이쯤 쓰고 집 정리나 해야겠다. 그게 곧 내 마음 정리, 인생 정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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