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달을 질질 끌어왔던 책 한 권을 드디어 다 읽었다. Angela Duckworth의 <그릿>이다.
저자 앤젤라(Angela)는 심리학, 행동과학계의 스타다. 그녀와 스티븐 더브너(Steven Dubner, 괴짜경제학의 저자)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There's no stupid question>은 요즘 내 산책길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보물이다. 원래부터 행동과학에 많은 흥미를 가진 내게 그녀의 연구와 책, 팟캐스트는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떻게 자기계발을 해야 하고, 자식은 또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통찰력을 선사해 준다.
베스트셀러 <그릿>으로 알려진 그녀의 연구는 '성공'에 관한 것이다. '성공'하는 데 있어 재능이 중요한 지 아니면 '그릿'으로 불리는 끈기(투지)가 더 중요한 지가 핵심 질문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그녀의 결론은 후자 쪽이다. 어떤 분야든 높은 성과를 달성하려면 재능보다 그릿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자주 '네가 천재는 아니잖니'라고 말하던 아버지를 둔 앤젤라가 이런 연구로 성공을 이뤘다는 게 재밌다. 아버지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열망이 그 정도로 컸던 게 아닐까). 이런 류의 연구는 이미 많이 있지만, 능력만능주의(meritocracy)에 길든 현대인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우리는 천재를 좋아한다. 높은 성취를 이룬 이들을 한 데 묶어서 천재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선을 긋는다. 그럼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그들은 애초에 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므로 내가 그들과 경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대단한 천재성을 가진 이들이고, 나는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의 천재성에 범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나와는 차원이 다른 재능을 가졌을 뿐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란 건 실재하고 또 중요하다. 하지만 앤젤라의 연구를 포함한 많은 사회과학 연구들이 말하고 있는 바는 이것이다. 재능은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과 지루한 시행착오를 견디는 끈기 없이는 개발되지 않는다. 재능의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노력 없이 최고가 되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 최고가 되기도 어렵다. 둘 다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천재'라고 자기 일이 쉬운 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이참에 '천재'를 이렇게 재정의 해보면 어떨까. 천재는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노력을 들였는데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다. 내가 천재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 정의에 따르면 그들이 꼭 천재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나보다 열심히 재능을 갈고닦은 사람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저들이 천재라고 단정하려면 적어도 직접 같은 양의 연습을 해본 뒤에나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증명하려다가 덜컥 내가 천재가 돼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타인을 천재라고 쉽게 부르지 말고, 내가 천재가 아니라고도 쉽게 단정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