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 싶어 했다. 실제 갈릴레오는 의사가 되기 위해 피사 대학에 들어갔다. 결국 중도에 그만두고 더 흥미를 느낀 수학과 천문학으로 길을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 의학 공부를 그만하겠다고 그가 말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역정을 내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아들을 의사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은 갈릴레오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찰스 다윈의 아버지도 같은 부류였다. 찰스 다윈의 경우,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의사였다. 아버지는 의사라는 가업을 아들들이 이어 주기를 바랐다. 다윈은 그의 형과 함께 의대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갈릴레오와 마찬가지로 의학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의 관심은 지질학과 식물학에 있었다.
만약 갈릴레오와 다윈이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의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천동설, 즉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태양)이 돈다는 구식 세계관은 폐기되지 못하고 얼마간 더 유지됐을지 모른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란 책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하지 않았어도 결국은 누군가가 비슷한 업적을 이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늦춰졌을 것이고 그 영향은 도미노처럼 넘어져 후대 과학 이론들의 발견 시점을 지연시켰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둘이 의사가 되지 않은 것은 인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주말, 우리 딸 리나의 돌잔치가 열렸다. 돌잡이에서 리나는 골프공을 잡았다. 하체가 튼튼한 아빠 엄마를 둔 것으로 볼 때 탁월한 선택이다. 훌륭한 골프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무튼 돌잡이는 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판사봉을, 그리고 세 번째로 청진기를 잡았다. 청진기를 기어이 잡고 나서야 돌잡이 이벤트는 끝날 수 있었다. 의사인 리나 할머니가 청진기 잡기를 강요(?)했기 때문이다(참고로 의사들은 세상에 직업이 의사밖에 없는 줄 안다). 리나는 결국 청진기를 잡아주었고, 이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ㅎㅎㅎ). 할머니는 울었고 나는 웃었다.
의사가 되는 일에 나쁠 건 없지만 의사 되기를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 더구나 앞으로 의사들은 과거 의사들이 누렸던 혜택을 많은 부분에서 구조적으로 누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 옛날 생각으로 미래 자녀들의 삶을 재단하면 안 된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바가 정말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길도 모르면서 여행 가이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골프 선수든, 판사든, 의사든, 아이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으로 커 준다면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돈 많이 벌어서 부모 호강시켜준다면 굳이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