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특히 요즘 난 31년여를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있다. 11월 한 달 동안 열 권 정도 읽었다. 평생 처음이다. 나는 원래 독해 속도가 느려서 다독가가 아니다. 아니었다. 최근에 그나마 독해 속도가 많이 올라왔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느린 편에 속한다. 내 아내는 몇 줄씩을 대각선으로 한눈에 읽을 수 있지만, 나는 한 번에 고작 두 세 단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80-100 페이지 정도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신기한 것은 내가 놀면서 열 권이란 많은 책을 읽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달은 어쩌면 내가 살면서 가장 바쁜 시기에 해당하는 한 달이었다. 그럼에도 해냈다. 아니 그래서 해낸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너무 바쁘고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책이 주는 위로가 더 간절했다. 책을 읽고 있을 때만큼은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긴장감을 떨쳐내고 오직 나 자신과 1:1로 여유롭게 대화 나눌 수 있었다. 독서는 그저 현실 도피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그동안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읽겠다는 마음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다. 시간은 만드는 게 아니다. 배분하는 거다. 그러므로 내 계획표에 배분되지 않은 일은 그저 내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후순위라는 뜻이다.
최근 독서량을 늘릴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글쓰기다. 최대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중엔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려면 할 말이 있어야 한다. 할 말이 있으려면 내 머리로 들어가는 자극이 있어야 한다. Input인풋 없이 Output아웃풋이 있을 순 없다. 물론 독서만이 인풋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접적인 경험이나 다른 종류의 예술도 그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독서는 비용 대비 효용이 가장 높은 인풋임에 틀림없다. 만 원 정도의 돈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여기서 오는 영감, 깨달음 같은 것들이 또 내 글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쓰려고 하니 많이 읽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더라.
<모닝 루틴>의 작가 쓰카모토 료의 말처럼, 책을 읽을수록 나를 바꾸고 싶다. 더 많이 읽을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이런 면에서 책 읽기는 나를 계속 작아지게 만든다. 많이 알아 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하찮아진다. 긍정적인 초라함이다. 결핍만큼 중요한 유인은 별로 없으니까. 지금 잘 몰라서, 앞으로 더 잘 알고 싶다.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서, 나중엔 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 더 많은 독서를 할수록 나는 더 나를 바꾸고 싶어 지겠지만, 돌아보면 나도 벌써 참 많이 바뀌었다. 책 읽는 이유는, 그거면 됐다.